[야긴과 보아스] 오늘을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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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오늘을 잘 살려면 과거의 상처나 실패에 머물지 말아야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에 위축되지 말아야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매이거나 미래를 두려워하기에 ‘오늘’을 살지 못합니다. 후회와 근심에 묻혀 오늘을 상실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오늘’이라는 선물을 공평하게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1천440분이고 8만 6천400초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오늘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날이 오늘이요, 오늘을 살아야 진정 살아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믿음은 뜬구름 잡는 얘기도 겁 많은 사람의 현실 도피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오늘을 살아가게하는 힘이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마6:33)의 구체적인 실천의 장이 바로 오늘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 우리가 먼저 구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 구해야할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염려’입니다. 염려는 우선순위가 뒤바뀔 때 일어납니다. 염려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을 살려면, 매일 반복되는 염려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단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6:34)

예수님은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해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염려가 주는 상상력은 얼마나 파괴력이 큰지, 내일 일어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사느라 존재하는 오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오늘을 선물합니다’의 저자 성원경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이 되어야만 기쁨이 올 것이라 여기기에 ‘오늘’을 불안과 우울 속에 보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다리던 내일이 오면, 다시금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느라 오늘을 누리지 못합니다. ‘언젠가’라는 환상이 주는 기쁨을 찾느라,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기뻐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염려는 오늘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어제와 내일은 우리가 다룰 수 없는 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오늘’ 뿐입니다. 그럼에도 어제와 내일에 집착해 염려하느라 ‘오늘’이라는 선물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을 살아가려면 매일 습관적으로 염려하는 대신, 주님과 함께 오늘을 구체적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새로운 오늘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유상진 목사

<영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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