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수학자가 보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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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게 된 필자는 한남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집합론을 배우게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수학이 셈을 하는 실용적인 학문이 아니고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집합이란 분명하고 뚜렷이 구분되는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의 대상, 이른바 원소들의 모임을 말한다”라고 집합을 어렵지만 퍽 ‘순진한(naive)’ 정의를 하고 있다. 더 설명하기를 집합은 원소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그 원소가 집합에 들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야 하고 집합 속에 있는 두 원소를 꺼냈을 때 그 두 원소가 같은지 틀린지를 알 수 있도록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수학 자체는 평소 내가 생각해온 수학이 아니었다. 

수학자 칸도어(Georg Cantor, 1845-1918)는 집합론을 만든 사람인데 자기가 정의(定義), 정리(定理)를 만들고 증명하곤 했다. 그러면서 집합에는 그 속에 있는 원소의 개수가 무한한 무한 집합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무한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터부시되고 감히 영원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없는 때였는데 그는 무한을 손으로 주무르며 무한은 존재하며, 무한도 어떤 무한이 더 큰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 집합에 속해 있는 원소의 개수를 그 집합의 기수(基數)라고 하는데 자연수 N={1, 2, 3, 4, …}의 기수를 최소의 <초한수>라 하고 직선상의 모든 점 집합의 기수를 <연속체의 기수>라고 했다. 그는 어떤 무한이 더 큰가를 알아내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0밖에 셀 수 없는 원시인은 10보다 큰 수는 무한이다. 그 원시인에게 50마리의 양과 52마리의 오리는 다 무한이다. 그가 어느 쪽이 더 큰 무한인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 양 한 마리와 오리 한 마리를 짝지어 우리에서 밖으로 내보내면 남은 쪽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같이 크기를 비교할 때는 세는 것보다 비교하는 것이 앞선다. 이 원리를 이용해 그는 모든 무한집합의 크기를 비교했다. 짝수, 홀수, 유리수, 자연수는 다 크기가 같다고 증명했다. 그리고 그는 최소의 초한수보다 크고 연속체의 기수보다 분명히 작은 기수를 가진 집합이 있다는 증명을 하려다 실패하고 말년에 우울증에 걸려 1918년에 세상을 떴다. 

요즘은 원시인처럼 모른다고 생각한 신비한 세상이 계속 과학으로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교황청은 종교재판으로 막으려 했지만, 천동설은 지동설로 바뀌고 지금은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를 인간이 탐색하고 있으며 태양계의 한 행성인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며 인간은 언제부터 이곳에 살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럼, 신은 신비의 베일이 벗겨질 때마다 구석에 몰려 그 설 자리를 잃고 물러나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만 알고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베일에 숨겨진 하나님의 신비를 알아내기란 요원하다. 위대한 과학자 뉴턴은 자기는 아직도 발견되지 아니한 큰 대양이 자기 앞에 누워 있는데 자기는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보통 것보다는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으며 기분 풀이를 하고 사는 어린애와 같다고 과학자인 자기를 비유했다. 수학이나 과학으로 영원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 또 위협할 수도 없다. 성경에는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마 13:11)”라는 말이 있다. <너희>가 누구인가? 믿는 자(복음을 받아들인 자)이다. 천국의 비밀은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런데 요즘, <너희>는 줄어지고, <그들>만 늘어나고 있는 게 걱정이다.

오승재 장로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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