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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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멘.

이 찬송가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한 학창 시절에 불렀던 18번입니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제일 먼저 외운 찬송가입니다.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고 1년이 좀 넘은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18번이라고 하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친구들도 복음성가나, 찬송가 중에 18번이라며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이나 복음성가를 부르며 예배시간에 특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내가 좋아하는 찬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중에 나는 어떤 것을 18번으로 할까 생각하며 무심코 부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18번이 된 찬송가입니다. 정말 의외였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들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부르셨으니 주저하지 않고 응답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자신을 가로막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 평생을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환상 중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는 목소리를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타락하고 패역한 백성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일군들이 부름을 받는 장면들을 보면 참으로 신비합니다. 너무도 경건합니다. 너무도 거룩합니다. 너무도 신기합니다. 저도 그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도 신비하고 감사하고 기쁠 따름입니다.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는 저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도 형제들 중에도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불신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나중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주님께 인도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참으로 놀랍고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은 어떤 계획이셨을까?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저의 생각과 삶은 헌신의 삶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교회 목사님께 찾아가 신학하는 길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몇 가지의 과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의지하며 함께 신앙하던 친구들 중에는 건축과를 가서 교회를 지어주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해양대학에 가서 나중에 선교지에 태워다 주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해 목사가 되는 것이 사실화 되어 함께 기도하고 서로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을까요? 그렇게 대학 진학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서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하던 고3 때였습니다. 그 해 봄, 어느 날 감기인 줄 알았던 기침이 폐결핵으로 인한 기침으로 병원에서 진단받았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난감했습니다. 결국 학교 정규수업만 하는 고3의 시간은 결국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또 다른 준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길은 참으로 오묘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멋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좌절을 맛보던 순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길이 열렸습니다. 비록 당당하게 신학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종의 길을 가는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이 찬송을 부르면 마음 한 구석에 왠지 모를 감동이 사무쳤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누구도 막지 못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누구도 막지 못할 사명의 길을 가렵니다.

최대중 목사

<고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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