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거지 왕국의 왕자거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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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와 베짱이에게 닥쳐오는 겨울철처럼 하루살이 인생이 겪어야할 엄동설한이 기다린다. 추운 겨울철은 대낮에 이곳 저곳을 쏘다니면서 얻어먹고 끼니를 이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매서운 북풍이 불고 눈이 내리는 겨울밤은 그저 지옥의 고통과 다를 바 없다.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결빙의 계절이 온 것이다. 오직 어느 곳에서 하룻밤을 편안하게 지샐 것인가가 최대의 문제이다. 그때에 아궁이를 찾아 발이라도 녹일 수 있으면 그곳의 하룻밤이 바로 파라다이스인 것이다. 따뜻한 안방을 독차지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견줄 수가 있다.

나의 각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힘있고 거지생활에 도통한 왕초가 되어야만 불땐 아궁이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똘마니가 감히 그런 아궁이에 발을 대고 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똘마니들에게 주어지는 행운은 그저 길거리 모퉁이에 행상들이 두고 간 물건들 위에서 잠자는 일인 것이다. 그런 곳도 똘마니 거지들에게는 일류호텔과 같은 곳이다. 그마저 차지한다는 것도 똘마니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루 빨리 왕초가 되어 불땐 아궁이나 판자선반이라도 차지하면서 한때의 파라다이스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자 그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비록 거지의 세계일지라도 분명 왕초가 되는 지름길이 있었던 것이다. 돈을 구걸하고 쌀밥과 고기를 많이 얻어서 혼자만 포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똘마니들에게 자주 나누어 주고 베푸는 것이 왕초가 되는 왕도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부지런하게 돈과 쌀밥과 과자와 빵을 넉넉히 얻음으로서 왕초의 기질을 실현했다.

왕초는 대낮에도 어느 집 처마 끝이나 양지에 앉아서 구걸한 전리품을 함께 나누어주면서 자기의 동아리를 형성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행동 반경 속에 몰려오는 똘마니들 덕분에 쉽게 왕초의 삶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거지들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힘센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들에게도 얻어온 전리품을 함께 나누어 주었으며, 거지 사회에 널리 알려진 자선사업가가 된 셈이었다. 이렇게 거지왕국의 왕자거지의 삶을 통해 나는 인생의 교훈을 차곡차곡 쌓아 나아갈 수가 있었다.

개인의 성공과 성취는 반드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의 삶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준 실존적 한계상황 속에서 함께 나누고 함께 동고동락 하는 삶 속에서 그와 같은 한계상황을 뛰어넘어 삶에 이르는 철학을 구축할 수가 있었다.

거지들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겨울의 밤은 무서운 공포심을 안겨다준다.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온정 많은 거지왕초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은 거지들만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거지 공동체의 착한 이웃들

나의 생애에서 나는 여러 번 ‘왕자거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거지 세계에도 역시 왕국이 있는 법이다. 왕초거지들 밑에는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지 왕국의 판도나 영역도 분명하게 구획이 지어져 있었다.

내가 있던 거지 왕국의 주무대는 주로 부산 본역이나 부산진역을 비롯해 국제 시장이나 자갈치 시장 부근이었다. 잠자리는 주로 영도 다리 아래나, 혹은 장사하다 물건만 가져가고 남겨 두는 자판 위나 밑이었다. 그곳은 누가 붙잡으러 올 사람이 없었기에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었다.

거지 왕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지 공동체인 우리들을 위해 마음씨 좋은 아낙네들이 노상에서 따뜻한 음식을 싼값에 팔았다. 아마도 거지 왕국을 함께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역군이 아니었나 싶다. 거지생활의 보람이라는 게 따로 없고 보면 먹는 것이 최상의 낙이었다. 새벽녘이면 모든 거지들이 깡통을 들고 마음씨 착한 아낙네들을 찾아나선다. 거지 떼들이 몰려가서 경상도 말투로 “한 그릇 주이소”하면 그때 기분에 따라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한다.

그러나 왕자거지인 내가 나타나면 아주머니들은 거의 다 너그럽게 깡통이 넘치도록 담아 준다. 어떤 분은 “얘, 마수(개시)도 안 했다 아이가. 하지만 네가 먹고 퍼뜩 크거라” 하면서 위로의 말까지 건넨다. 또 어떤 아줌마는 내 코가 잘 생겨서 큰 복을 받을 것이라는 덕담도 해주었다

힘들고 배고팠지만 또 하나의 착한 이웃과 정을 나누던 그 시절은 그래도 즐겁기만 했다. 따끈한 죽을 얻어먹고 나면 또다시 국제시장을 돌면서 동냥하는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거지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왕초거지에 이르게 되었다. 거지 왕국에는 보이지 않는 등급이나 서열이 짜여져 있어서 어딜 가나 불문율처럼 통하고 있었다. 거지들의 등급은 왕초거지가 첫째요, 다음은 내초거지, 그 다음은 초초거지나 신초거지이고 똘마니는 끝에서 일 번이 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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