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부에서 함께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주한 미8군으로 자원하여 미군의 신분으로 모교의 법대에 편입, 법학을 공부하던 옛 친구가 보내준 글을 읽었다. 1955~56년도 우리나라 원자력이 도입되던 초창기의 이야기인데 이 글을 읽어보면서 ‘이승만(李承晩)’이 공연히 ‘국부(國父)’가 아니라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인물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93세의 이창건(李昌健, 1930~ ) 노(老)원자력 과학자가 국립묘지에서 올린 술 4잔 중에서, 첫 번째 올린 술잔은 이승만 박사를 추모하는 잔이었다. 「UAE 바라카 원전입찰」에서 우리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선진국들을 모두 꺾고 대한민국이 승리하던 날! 이창건 박사는 볼 위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가 젊은 시절 그를 미워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어른의 훌륭한 점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정치 체제를 국민들이 반대하자 피를 흘리지 않고 하야(下野)한 점도 그렇고, 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점은 큰 업적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실용주의와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불러왔다고 본다.
이창건 박사는 1955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50년대 초반 이공계 엘리트 중에는 공군소속의 기술 장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산업기반이 전무(全無)하던 시절, 그나마 전공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한 사람이 제대하면서 미군 장교로부터 「원자력 공학입문」이란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교재를 갖고 물리학과 공학전공의 공군장교 출신 12명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매주 한 차례 문교부 창고 건물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이창건 박사도 학과 선배의 권유로 이 모임에 가담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원자력공학입문」의 내용은 전기공학과에서 배운 적이 없는 교재인데 책이 1권밖에 없으니 가장 막내인 내가 일일이 타자를 쳐서 나눠주었다. ‘원자폭탄’은 알지만 아무도 「원자력발전소」는 생각도 못한 시절, 스승도 없는 상태에서 언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학문에 12명의 젊은이들이 빨려 들어가 있었다.”
이승만은 무언가를 간파(看破)해서 진수(眞髓)를 찾아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개념에 눈을 뜬 ‘이승만 정부’가 그때 문교부 산하에 ‘원자력과’를 만들었다. 그 해 7월,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의 과학고문으로 국내 화력발전소 건설에도 도움을 준 「워커 시슬러」라는 미 전력협회(電力協會) 회장을 만난다. 이대통령이 방한한 시슬러에게 전력난 해결방안을 묻자 그는 갖고 있던 나무상자 하나를 열었다. 그 속에는 자그마한 낯선 막대 하나와 석탄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다음은 시슬러 회장과 이승만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대화의 장면이다. *시슬러: 대통령 각하! 이게 ‘핵 연료봉’이란 겁니다. 같은 무게 석탄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300만 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시슬러 회장! 그걸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슬러: 에너지는 땅에서 캐는 게 아니라, 머리로 개발하는 겁니다. 헌신적인 과학기술자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국비 유학생이 선발됐다. 10년간 236명의 젊은이들이 미국·영국·캐나다에서 원자력을 공부했다. 그 속에 ‘스터디 멤버’들도 포함됐다. ‘스터디 그룹’의 좌장은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였던 윤세원이었다. 윤 교수는 ‘문교부 원자력과 과장’으로 옮겨갔는데 예산이 부족하자 자신의 서대문 집과 용인 고향 땅까지 팔았다.
이 대통령은 1인당 연간소득 40달러이던 시절, 1인당 6천달러가 드는 해외연수에 10년간 236명을 보냈다. 1956년에 보낸 1기 유학생 이후, 4년 동안 8차에 걸쳐 200여 명이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들이 ‘한국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원자력연구소 내에 연구용 소형원자로 《트리가 마크2》 건설을 이끌며 한국의 ‘원자력 시대’를 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5년 90세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가 육성한 원자력 인력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눈물의 햄버거를 먹으며 배워 「APR 1400」이라는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원자로를 개발해냈다. 《어떤 사고가 나더라도 사람은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없는 ‘세계 최고-최강’의 안전기술》이 탑재되어 있다. “아, 국부 이승만!”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