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구도자 구상의 인생유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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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인(匠人)이 아니고 사제(司祭)다”

구상 시인의 첫 시집 <具常>의 ‘自序’ 말미에서 시집 출간이 두 차례나 중단되는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출판계약으로 인세를 받아 문우들과 술도 마셨는데 시집은 북한 괴뢰들의 6.25 남침으로 무산되고 다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1.4 후퇴를 한 탓으로 두 차례나 인쇄 작업이 중단되었다고 저간의 일화를 밝히고 있다.  

네 마음에다      

요즈음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나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으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서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서 들으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첫시집 <具常>에서)

월남하고 서울에서 출판한 첫 시집 <具常>에 수록된 작품이다. 일제하에서 해방되고 북한의 공산국가 수립과 그 압제로 자유대한으로 탈출한 시인의 자기 반성적 갱생의 다짐을 하는 주제이다.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격변기에 부닥치는 인간적 좌절과 고뇌의 심정을 역설과 해학의 분위기로 나타내고 있다. 천혜의 인권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이 자문자답의 구성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이다.

시제 ‘네 마음에다’의 ‘네’는 시적 화자인 시인 자신을 지칭한 것이다. “요즈음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너나없이 놀아날까 두렵다”는 것은 허위의식으로 일그러진 세태에 대한 역설(逆說)의 수사(修辭)가 아닌가. 이 시구를 읽으며 문득 오늘날의 세태가 반복되는 듯해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구상 시인이 해방 당시에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풍자했던 세태가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씁쓰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둘째 연의 역(逆) 발상으로써의 해학은 마지막 연의  자기 반성과 구도(求道)의 좌우명이 된 잠언시가 되었다.  

고요

평일 한낮/ 명동 성당에는/ 고요만이 있었다/ 온 세상이/일체 멈춤과 같은/ 침묵과 정적 속에서/제단 위에 드리운 성체등이/ 이 역시 고요한 빛을/발하고 있었다/ 수라장(修羅場)을 방불케하는/ 문 밖 거리의 인파와 소음은/마치 딴 세상/ 오직 죽음과 같은 고요/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그 고요 속에 나 또한/고요히 잠겼노라니/ 그 고요가 고요히 속삭였다/ 이제 너의 참 마음을 열어 보라고!/ 그러나 나는 말을 못하고/눈물만 흘렸다

‘고요’는 구상 시인의 신앙인으로서 내면의 사유와 감성의 정서가 심화된 작품이다. 서정시의 전범이 된 시이기도 하다. 시적 대상이 된 성당 안의 성체와 장식품, 적막감에서 깨닫는 신비성의 분위기에 싸여 무아의 경지로 빠져드는 혼자서 드리는 미사이다. 성당 밖의 소란한 세상과 성당 안의 분위기를 절대 정적의 고요와 대비시킨다. 

구상의 시편들은 기독교 세계관이 바탕이 된 명상시집이다. 한편, 종교적 섭리를 관념적 지식으로만 인식하는 시대의 실상을 고발하고 성토하는 행동하는 시대의 풍운아이기도 했다. 

구상 교수는 “나는 장인(匠人)이 아니고 사제다. 언어의 영혼을 무겁게 여겨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지 말라”는 신념을 갖고 대학교단에 섰던 분이다. 중앙대 문창과 제자인 정종배 시인이 기억하고 있는 스승의 잠언이다.

  시집으로 <구상>, <초토의 시>, <유치찬란> 등과 자선시집 <모과와 옹두리에도 사연이>라는 자선시 모음집이 있다.

구상 시인은 모태신앙을 가진 천주교 신자이다. 일본대학 종교과에서 불교의 법문과 동양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독교의 세계관을 갖고서 세상의 다양한 종교사상을 두루 섭력(涉歷)한 특이한 종교학 학자이기도 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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