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가을언덕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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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문턱 낙동강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과 푸른 하늘, 높은 뭉게구름 떠있는 가을언덕에서 곡식들이 익어가는 가을들녘을 바라본다. 역대급 여름장마와 폭염 속에서도 절기로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를 지나며 계절변화의 자연질서 앞에 경외감을 느낀다.

비교적 높은 지대의 밭에는 콩 등 작물들이 드문드문 나고, 겨우 자란 듯해서 알아보니 폭염과 늦가뭄으로 씨앗을 두 번이나 심었는데도 그 정도라는 얘기를 듣고 속 타들어 갔을 농심을 생각한다. 옛적 비가 안내려 천수답이었던 우리 집 들녘에 가면 벼논은 비가 와야 모심기를 할 텐데 논이 메말라서 못자리판의 모만 웃자라가는 논가에서 아버지가 마른하늘 쳐다보며 애타게 담배만 피우셨는지 담배꽁초만 흩어져 있었던 옛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급기야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기후변화가 ‘뉴노멀’로 우리 곁에 왔다. 빠르게 진행된 ‘저출산 고령화’와 준비부족으로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있다. 1인 가구, 2인 가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고령화의 속도가 어느 선진국보다도 빠르다는 점이다. ‘가정이 사라진다’고들 한다. 미래학자들도 21세기 우리사회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가정에서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었다.

일본에서 아기용 기저귀보다 성인용 기저귀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뉴스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노인인구 1천만 명 시대에 이웃나라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 중 추정 치매환자 수는 무려 100만 명에 달하고 일본은 이미 600만 명의 치매환자가 있는 ‘치매대국’이다. 치매는 한 가정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쉬지 못하고 일하면서 빈곤에 시달리는 OECD 노인최빈국의 노인들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노인세대는 전 생애를 통해 사회·역사적인 혼란을 경험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고 가족과 국가경제를 위해 희생해온 세대이다.

노인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겪고 왔다. 굴곡진 삶을 헤치고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부모님들이 건너온 세월의 강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1개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노인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먼저 지나왔다. 앞으로 겪어야 할 삶이  어떠할지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설파했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노년론’에서 “큰일은 육체의 힘이나 재빠름이 아니라 사려 깊음과 판단력에 의해 이뤄진다”며 노년의 장점을 강조했다.

한편 지난 6개월 넘게 의대정원 증원문제로 야기된 의정갈등은 ‘응급실 뺑뺑이’ 사태로 아우성인 가운데 대형병원까지 응급실 축소운영으로 급기야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마치 마주 달리는 열차를 보는 듯 국민들과 환자들을 추석연휴 의료공백을 걱정하며 가슴 졸이게 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코로나19 펜데믹’이 변종 바이러스 확산세로 재유행 조짐이라는 반갑지 않는 뉴스도 들려온다.

“거칠은 내 동산에 샘 하나를 찾았어라 물인들 많사오리 웬 맛인들 좋으리만 임이여 오시옵소서 샘물을 마시옵소서” 

-춘원 이광수의 시조 중에서

조상인 장로 (안동 지내교회)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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