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랫동안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쳐 발전되어 왔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진입은 혁명적이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진입은 더욱 혁명적이었다. 특히 지금의 투르키예의 아나톨리아반도에서의 철을 이용한 전차나 무기는 청동기문화를 무력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에스파니아의 후원을 받아 콜럼버스(C. Columbus)가 대서양을 횡단한 끝에 1492년 서인도제도를 발견했다.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3차례(1497~1504)에 걸친 탐험을 통해서 현재의 브라질이나 남미까지 탐험해 보고,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소수의 포르투갈인들과 스페인인들이 조총을 통해 석기문화를 가진 다수의 인디언들을 정복했다.
일본의 왜구가 1592년에 조선을 침탈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무기는 조총이었다. 이것은 포르투갈인들이 동남아 정복지에서 사용하던 무기 기술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후 식민지 패권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장악했다. 그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패권자가 되었다. 특히 영국은 농업혁명을 거쳐 1760년대부터 산업혁명을 통해서 세계적 패권 국가로 급부상했다. 더욱이 증기기관을 통한 기계적 동력을 이용한 산업의 급진적 발전이라는 제1차 산업혁명에서, 전기를 통한 각종 산업의 발전이라는 제2차 산업혁명은 세계 문명사를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은 기습남침했다.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3개월 만에 낙동강 이남 지역을 제외하고 남한의 전 국토가 북한 공산군에게 점령당했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런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242대의 소련제 탱크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6‧25 당시 단 한 대의 탱크도 없었다. 오늘날은 컴퓨터와 정보통신문화를 주축으로 하는 제3차 산업혁명시대를 거쳐 로봇과 AI 등 기술문화를 주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했다. 누가 먼저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토인비(A.J. Toynbee)는 인류문명의 발전사를 도전과 응전에 따라 발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전이 왔을 때, 적절한 응전을 하지 못할 경우, 기존 문명은 쇠퇴 내지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강조되는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는 문명의 위기를 미리 간파하는 사람들이다. 문명을 쇠퇴하게 하는 도전의 기미를 누구보다 먼저 예민하게 간파하고, 그 도전에 올바로 응전하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일깨우고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창조적 소수자의 역할을 통해서 국가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려는 이들도 많지만, 반면에 독선적 아집과 자기 몫만 챙기려는 이기주의자들도 있다.
북한정권은 광복 후 오늘날까지 적화통일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밀착해 새로운 군사기술을 전수 받아 신무기 개발로 도전해 오고 있다. 예컨대, 북한은 자폭형 드론을 개발해 남한의 K2 전차의 타격을 시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형 미사일을 부단히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지원의 근시안적 시각을 과감히 탈피하고, 창조적 소수자들의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대폭 지원해야 한다. 그 힘의 바탕 위에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온 국민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