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주님의 시선

Google+ LinkedIn Katalk +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의 성 그레고리 미사(Mass of saint Gregory)라는 그림은 중세 말기 르네상스 초기에 완성된 그림입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존경받는 성 그레고리 1세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은 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 있고 그 옆 다른 사람은 사제의 돈을 훔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지만 삶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러자 그림에 그리스도가 직접 제단에 나타납니다. 탐욕은 신앙인들에게도 너무나도 힘든 욕구입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사람들이 모세를 찾아가 “우리에게 요단 동편을 주신다면 이곳에 우리를 짓고 양을 키우며 자녀와 함께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합니다. (민32:5) 이 내용도 결국 탐욕의 마음입니다. 탐욕은 신앙이 있는 자들에게도 찾아옵니다. 물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축이 많아서라고 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로 한 형제들이 서로 부모님을 요양원에 숨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를, 한 사람은 어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을 자신들이 유산으로 물려받기 위해 형제가 양 부모님을 서로 모시고 간 것입니다. 효도가 아니라 이것은 납치수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신앙인이고 부자입니다. 이것은 욕심이 만든 일들입니다.

이때 모세가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리프네 여호와) “여호와의 얼굴이 있는 곳”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이 있는 곳 즉 하나님께서 관심 갖는 일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심에 서 있지 말고 하나님이 관심 갖는 곳에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일까? 지금 주님의 시선이 어디에 있을까? 정치적 상황으로 자기 나라에 갈 수가 없어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어 추방당하는 난민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추석 명절을 외롭게 보내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시선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항상 주님의 시선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자가 디아코니아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1미터 개인의 간격’이란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우리가 ‘사회적 거리 두기 2미터’를 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2미터 간격은 감염과 안전을 지켜주는 방벽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1미터란 개인의 공간이고 나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타인이 1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불안이 가중됩니다. 가장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거리가 바로 1미터입니다. 그런데 1미터 안으로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0.1mm라도 떨어지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주도권을 주님에게 다 드리세요. 주님의 시선을 보면서 살아갑시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