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9)

Google+ LinkedIn Katalk +

거지 왕국의 왕자거지 (2)

똘마니들에게 복음전도를

나는 어느덧 부산 일대의 거지 세계에서는 유명세를 내는 왕초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왕초가 되려면 우선 돈을 잘 얻어야 한다. 또한 잘 베풀어야만 하고 좋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가만 놔두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자 내 주변에는 10여 명이나 되는 똘마니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접어 두었던 전도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증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먼저 똘마니들이 돈을 못 얻어 왔을 때를 기회로 잡았다. “누구든지 나와 함께 교회에 가면 돈도 나눠주고 꿀꿀이죽도 사 주며 빵도 사 준다”고 하자 똘마니들은 마냥 좋아하며 함께 교회당을 찾아 나섰다.

주일학교에서 배운 요한복음 3장 16장 말씀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를 외우는 똘마니들에겐 상급으로 맛있는 빵을 나눠주었다. 

물론 꿀꿀이죽은 더 큰 보상이었다. 꿀꿀이죽이란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밖에 내다 팔면 그것을 다시 요리해서 만든 죽을 말한다. 요즘 비슷한 음식으로 부대찌개가 있다. 먹다 보면 가끔씩 대추씨도 나오고 닭 뼈다귀나 생선뼈도 나오고 그 속에서 별 것 다 나오기도 했지만, 얻어먹는 우리 주제엔 특급 음식이었다.

얻어먹고 빌어먹는 음식물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여관이나 시장에서 주는 음식물 중에는 정말 더럽기가 짝이 없는 음식물도 있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코 푼 종이 뭉치나 먹다가 뱉아놓은 음식물도 더러 나오곤 했다. 그러나 얻어 온 음식물을 놓고 단 한번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의 왕초거지 생활이 점점 더 익숙해 갈 무렵이었다. 옛날 같으면 영도다리 밑이나 남의 집 굴뚝 옆에서 자려하면 왕초가 와서 그 자리를 뺏었지만 지금은 내가 왕초가 되었으니 어떤 거지도 나를 얕잡아 보지 못했다.

왕초거지였으나 항상 주일이면 교회당을 찾아나섰고 동냥한 돈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돈을 정성을 다해 헌금으로 드렸다. 어떤 교회에 나가면 동냥하는 거지라고 미리 동전 몇 개를 주면서 끌어내기도 했으나 나는 결코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에 관해 양보한 적은 없었다.

교회에서 냉대받는 왕초거지

나는 어떤 교회에 나가더라도 결코 하늘 나라 왕궁의 왕자다운 마음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그들이 때묻은 거지 옷을 입은 나를 동냥하러 온 거지로 오해하고 문전 박대를 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과 다투지 않고 또 다른 이웃 교회로 발길을 옮겨가곤 했다. 아마도 오늘의 교회 역시 거지의 모습, 아니 소자의 모습으로 오신 작은 그리스도들을 문전박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나의 경험으로 보아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때는 옻이 올라 온몸에 진물이 줄줄 흘러내려 마치 나병환자처럼 되었지만 주일만은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나는 교회당을 찾아 나섰다. 그때는 정말 나환자 취급을 받으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쫓겨나기가 십중팔구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님께 눈물로 호소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불쌍한 거지왕자이지만 언젠가 나의 참된 모습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 수많은 수모들을 능히 견뎌 나갈 수 있었다.

문둥이 거지라고 돌을 던지거나 흙을 뿌리거나 심지어 침을 뱉는 등 별의별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며 중보기도를 드렸다.

옻 오른 거지왕자

거지는 가는 곳이 내 집이요 자는 곳이 안방이고 구걸할 때 돈주는 사람이 부모 형제며 자매이다. 밤이 되어 바람막이를 찾다가 보면 남의 집 모퉁이나 논밭에 나락을 쌓아 놓은 볏단이나 수수, 콩, 짚 등은 몸을 기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전라도 어느 마을에 가서 얻어먹다가 밤이 되어 나무를 쌓아 놓은 어느 집 창고 안에서 자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서운 옻나무가 있었다. 그 위에서 잔 다음날 나는 온몸이 가렵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울긋불긋 돋아났다.

‘이게 뭘까? 쥐가 물었을까? 벼룩이 물었을까?’ 며칠 간을 그냥 놔두었더니 갈수록 따갑고 아프고 진물이 흐르고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몸으로 구걸하러 다니니 이 집 저 집에서 나환자가 왔다고 물을 끼얹고 돌을 던지는가 하면 어떤 집은 무서운 개를 내보내 물게 하기도 했다.

갈수록 고통은 심해졌다. 독이 내부까지 들어가 배가 붓고 발걸음조차 옮길 수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이마와 얼굴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떡 반죽처럼 쑥 들어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얼마나 처참하고 서러웠는지 모른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