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개조론’과 ‘조선야소교회의 결점’
작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인생 여정은 복잡다단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시대관, 종교관과 가족관계를 간추려 적시(摘示)한다.
일제의 지배하에서 그가 쓴 <민족개조론>을 보면 그의 사상과 신념과 자신이 직면한 현실적 시대가 상충하는 인식으로 자기 모순에 빠진 결과가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조선민족이 서양의 자유주의적인 가치관을 신장하는 신세계를 지향하는 격문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여성의 인권신장 등을 강조하며 조선인의 사색 당쟁으로 야기된 붕당정치, 상반 계급 타파, 허례허식과 나태한 세속 등을 극복하자는 계몽주의적 신념을 아주 신선한 이슈로 개진하고 있다.
한편 일본 제국의 조선왕국에 대한 식민통치에 적극 호응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초기에 천도교에 입교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개신교에 몰입하고 불교의 법어를 인생 수양의 좌우명으로 삼기도 했다. 그는 종교를 치세의 율법으로 삼았거나 개인적 수양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 같다. 다분히 종교적 다원주의적 행적을 보인 것이다.
그가 쓴 ‘금일 조선 야소교회의 결점(缺點)’(1917.11.월간<청춘>)이라는 기고문에 당시의 한국 기독교계 목회자들을 비판하고 자기 스스로의 참회의 글을 덧붙였다. 6개 항목에 달하는 비판문에서 “개신교 목사들이~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으로 기도만 하면 만병통치한다”는 그릇된 포교방식과 “조선교회는 천주교, 개신교가 100년이 넘는 선교역사를 가졌는데, 어째 조선의 제소리 하나 없이 다 가져온 것이냐?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자주성)이 없다”, “조선의 기독교인은 감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신비적 체험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의 글은 한국 기독교에 대한 애정어린 호소문이된 것이다. 그는 비판함과 동시에 기독교의 유입이 한국에 끼친 것에 관해서도 격려와 소망의 격문도 썼다.
그의 한국 기독교 비판에 대한 교계 반응이다. 민경배 목사의 ‘한국교회와 이광수’(한국기독공보2000. 11. 4.)에서 “조선의 글과 말이 진정한 의미로 번역이 시초일 것이요~만일 후일에 조선문학이 건설된다면 그 문학사의 제1페이지에는 신구약의 번역이 기록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문성모 목사는 ‘춘원 이광수의 기독교 비판’(한국장로신문’ 2024. 7. 20)이라는 칼럼에서 “이광수는 기독교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있었으나 신앙인은 아니었다”고 전제하고 그의 많은 비판과 긍정의 생각들을 보면서 “오늘 한국 기독교가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100년 전의 비판적인 상태가 ~오히려 비판거리가 더 늘어나고 있다”고, 오늘날의 교계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