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 중에 단연 소나무가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름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에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했다. 경복궁(景福宮)을 비롯해 5대 고궁은 대부분 소나무로 지었는데 여기에 쇠 못 하나 쓰지 않고 건축했으나 건전하다. 소나무 중에도 최상은 춘양목(春陽木)을 꼽는다. 이 소나무가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춘양목은 더디 자람으로 3배 이상 세월이 걸린다. 대신 나무의 나이테가 3배 촘촘하고 나뭇결도 곱고 아름답고 강도가 강해 쉽게 썩지 않는다. 훗날 판재가 되어 말라도 뒤틀림이 적어 임금이나 고관의 관(棺)을 만들 때 사용했다. 춘양목을 뗏목으로 엮어서 한강을 통해 한양(漢陽)으로 가지고 왔다.
일제 때 춘양목이 수난을 당해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벌목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춘양목 밑동 굵기가 2미터 가량 되는 나무들도 많이 있었으며,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崇禮門)을 복원할 때 춘양목을 사용했다. 이때 봉화 어느 주민이 100년 된 춘양목 한 그루에 1천만 원이 넘는데 기증했다. 산림청은 2001년 봉화 문수산 지역을 문화재로 지정해 100년 후에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춘양목은 천천히 자라며 곱고 단단하고 산 북쪽 사면에서 자라며 겨울철 매서운 추위에서 자라 나이테가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한국교회가 초기에 우리나라가 쇄국정책으로 기독교를 사교와 서양문화로 박해를 심하게 했으나 순교를 당하면서 믿음을 지켜 교회적 사명을 다했다. 그 후 일정시대에 신사참배 문제로 박해가 심해 많은 목사, 장로, 신도들이 순교를 당했다. 해방 후 이북의 공산주의 체제로 핍박이 심했으며 6.25 전후 남한에서도 공산주의 사상으로 피해가 많아 순교를 당했다. 한국교회가 핍박 중에서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 교회적 사명을 다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가 핍박과 어려움이 없어 편안하고 믿음이 해이해져 교회적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편안할수록 소나무처럼 교회적 사명을 다했으면 한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