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현장에서 같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렇게 섬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소가 한국일 수도 있고 네팔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요즘 들어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자리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부르심을 따를 뿐이다.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
최근 네팔 카트만두의 병원에서 10여 명의 이사들을 대동하고 회진을 다닐 때였다. 나는 회진하다 말고 후배 의사들에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숨을 들이쉰 다음 다시 숨이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의사들이 당연하다는 듯, 웃으면서 답했다.
“그거야 죽는 거지요.”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게 사람이야. 그게 인생이야. 별거 아니라고!”
요한복음 7장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주 강력하게 하신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나는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숨 쉬는 것에 적용해 보았다. 숨을 쉬는 것은 우리에게 항상 준비돼 있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지만 그것이 멈추는 때가 있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게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죽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죽기 일주일 전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감동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예언처럼 말하고 싶다는 소망은 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신비한 것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어떤 세대가 올 것이니 부디 예수 잘 믿으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내가 선교지에서 경험하고 있는 삶의 현실은 아직 소리 높여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난 사역을 돌이켜 볼 때 내게는 쓰라린 경험이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 누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그 체험의 극히 일부를 이 책에 기록했다.
최근 들어 신문과 방송 같은 언론 매체와 영화를 통해서 나를 소개하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1년 4월에 부족한 사람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은 <소명 3-히말라야의 슈바이처>가 개봉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당황스럽고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구원받는 역사를 볼 때 담대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와 책은 겉으로 보면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상 그 속은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참으로 헌신된 훌륭한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처럼 연약한 종도 이렇게 쓰시는 것을 볼진대,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훌륭한 일꾼들을 통해서는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 걸까? 가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더욱 놀랍고 황공하며 부끄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