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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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왕국의 왕자거지 (3)

어느 날 아침, 남 밑에 앉아 깡통을 안고 전쟁을 원망하면서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느 할머니가 찬송을 하시면서 지나가지 않겠는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아이구! 얘 아가야, 너 옻 올랐구나. 그런데 옻이 너무 퍼져 속까지 들어갔으니 이걸 어쩌나. 손 좀 내밀어 봐라”하고 말씀하셨다. 냄새나고 진물이 흐르는 손을 내밀었더니 할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셨다.

“하나님, 이 소년의 무서운 옻 독을 치료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신 후 할머니는 “낙심하지 말아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너를 버려도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다시 용기가 생겼다. ‘삭막한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거지의 손을 잡아 주는 좋은 분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 얼마 동안 앉아 있었다. 짐작하건대 두세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까 내 손을 잡고 기도해 주신 그 할머니가 다시 찾아오셨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고 없을까봐 걱정하고 왔는데, 아직 어디 안 가고 여기 있구나. 너 우리 집에 가자. 내가 집에 가서 무슨 일을 해도 네 생각이 나는구나.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집에 보낸 천사인가 보다” 하시면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 집에 가자마자 냄새나는 누더기 옷을 다 벗기시고 닭을 잡아 닭 물로 목욕을 시켜 주셨다. 그리고 기도하신 후 얼굴과 팔에 진물이 흐르는 부분을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짜 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20일 넘도록 그렇게 어루만져 주시고 있는 힘을 다해 도와주셨다. 그렇게도 쓰리고 진물 나고 냄새나던 무서운 옻은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내가 몸이 정상으로 완치되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내게 아들이 있는데 군대에 나가 생사를 모르는구나. 내가 가진 논밭은 좀 있으나 농사를 못 지어서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단다. 내가 만일 돈이 있으면 너를 우리 집에 살게 하면서 눈도 고쳐 주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 텐데, 나는 힘이 없구나. 하지만 내가 사는 날까지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해 줄 테니 너는 앞으로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랑의 종이 되어라!”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하신 후 울면서 나를 보내셨다. 아마 내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셨을 것이다.

지금은 천국에 가셔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나는 주의 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할머니의 뜨거운 사랑의 손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 뒤 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 당시에 받은 위로를 떠올리며 우리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로 삼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전쟁 속에서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었겠는가. 나의 곁에는 거지 소년들이 많이 있었다. 눈을 뜬 건강한 거지들이었지만 음식을 잘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거나 비행기가 공습할 때 기관총 사격에 맞아 죽거나 얼어 죽고 굶어 죽지 않았던가. 그 같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왕초거지, 아니 왕자거지인 나는 씩씩하고 용감하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갔다.

살아야 할 이유 있네

어느 봄날, 동료 거지떼들과 시골 동네를 돌면서 밥을 얻어먹은 뒤 양지 바른 곳을 찾다가 부잣집 뒷동산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잔디가 소복이 솟아난 곳에 앉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몇몇 거지들은 배불리 얻어먹었기에 졸음이 오는지 졸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떠올리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 보았다. ‘이 거지 생활이 언제나 끝날 것인가? 만일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내가 과연 다시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볼 날이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다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의 망상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태양이 있는 쪽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한탄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나의 얼굴을 적셨다.

‘밤이 되면 어디 가서 얻어먹고 어디서 잘까. 나보다 힘이 세고 거지 경력이 많은 왕초를 만나 매라도 맞으면 어떻게 할까. 개가 물지는 않을까. 차라리 깊은 밤에 나무에 올라가 떨어져 죽어 버릴까. 아니면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던져 흔적 없이 죽어 버릴까.’ 이런 생각들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어느덧 해는 지고 동료 거지들은 잠에서 깨어 얻어먹으러 마을로 가자고 했다. 그때 잔디 위에 예쁘게 솟아오른 할미꽃과 꽃봉오리가 맺힌 진달래가 내 손에 만져졌다. 겨울 내내 죽은 듯이 보이던 것들이 봄이 되어 살아나는 것을 손으로 만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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