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0대4의 참패를 당하면서 8강 진출에 탈락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우승후보라는 체면을 구겼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당연히 디에고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 감독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귀국하는 패장 마라도나 감독에게 사람들은 ‘디에고’를 외치며 열렬한 환호와 사랑의 언어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감독직에 대해서도 축구협회나 그의 팬들은 물론 페르난데스 대통령까지 나서서 연임을 지지할 정도였다.
마라도나는 현역시절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숙적 잉글랜드를 격파하는데 수훈을 세웠다. 이 승리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에 패한 것을 설욕하는 쾌거였다. 그의 현역 시절 유럽에서의 활약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아르헨티나는 20년 전 선수 시절의 마라도나의 공로와 감독 시절의 오늘의 과오를 구분해 공로(功勞)를 더 높이면서 그를 계속 영웅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실 개인적으로 마약, 알코올, 폭력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영웅으로서의 그의 공로를 영원히 기리고 인정하는 아르헨티나의 국민성이 부럽기 그지없다.
한 사람의 영웅을 영웅으로 끝까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가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우리 사회는 한 인물에 대해 과오를 문제 삼아 그의 공로까지도 깔아뭉개고 죽이고 매장시키려는 못된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조선 시대부터 이런 풍조에 희생당한 그 수많은 귀하고 아까운 인재들의 끝에 차범근 감독이 있었다. 그가 감독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에서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 0대5로 참패했을 때, 대한축구협회는 경기 도중 그를 감독에서 퇴출시키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편승한 당시 매스컴들은 그의 사생활까지 들추면서 차범근을 국민적인 역적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차범근의 옛날 축구선수로서의 국위선양이 마라도나보다 못할까? 그는 현역 시절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마라도나와 같은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의 관심 밖이었던 은둔의 나라 ‘코리아’를 유럽과 전 세계에 알린 최고의 외교관이요, 유럽 교포들의 자부심이요,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유럽과 세계는 아직도 차범근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은 그에 대한 명예 회복은커녕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거나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