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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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존(現存)하는 최고의 애송시인(愛誦詩人) 공주사범학교 출신의 나태주(羅泰柱, 1945~ ) 시인 부부의 간절한 기도문입니다. 시골 초등학교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금년 팔순의 시골 할아버지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 그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時限附)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서 썼다는 시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이라는 제목의 시인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하소연하는 내용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제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는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菽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 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답하여 쓴 아내의 글입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문으로 된 시인데 아내의 절창(絶唱=뛰어나게 잘 지은 시)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 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의 남편으로/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 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부부가 나누는 지극한 사랑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지는 아침입니다.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라는 기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만은, 하나님께서도 아무래도 이만한 기도를 물리치시기는 어려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에 병색이 깊어졌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입니다. 위에서 나태주 시인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지켜보면서 그 부부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게 됩니다. 믿는 자의 임종은 임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삶의 새로운 전기(轉機)임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임종 때 부를 찬송과 기도도 언제나 연습하고 준비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임종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은총의 비결’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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