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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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초등학교 4학년 때일까 5학년 때일까. 운동회 때 학년 달리기가 있었는데 뒤쪽에서 혼자 놀다가 알지 못하고 달리기 경주를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보이지 않아 찾았는데 혼자 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놀림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달리기는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잘 달리는 아이들은 그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겠지요. 자신과 지켜보는 부모님을 위해….

처음 신학공부를 시작하던 때로부터 헤아리면 3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니 달려왔다고 해야 할까요? 담임 목회로는 26년을 달려왔습니다. 목양의 트랙을 다 달리기까지는 아직 10여 년을 더 달려야 합니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했는데, 저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난 후에는 과연 어떤 상이, 어떤 칭찬이 있을지.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저의 목회를 바로 세웠던 성경 말씀은 디모데후서 2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다른데 정신이 팔려 달리기를 못했던 것처럼 목회에도 본질보다 다른 것에 마음을 쏟아 올바로 달리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보여지고 있어서 더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자중하고, 경계하고, 근신하고, 반칙을 하지 않고 달리는 목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흔히 목사는 은퇴할 때 많이들 변한다고 하는데 변함없는 마음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교회는 있는데, 설교는 하는데, 목회는 하는데 예수님이 없는 경우를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 없는 목사가 예수 없는 교회에서 예수 없는 설교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수고비를 계산하고 있는 것은 말세에 경계해야 할 나의 달려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경건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축복 받은 왕으로 칭찬을 받으며 존경을 받으며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의 솔로몬은 우상으로 둘러싸여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나라를 나누게 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않고 들에 핀 꽃 한 송이,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능력 주심을 기뻐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앞으로 남은 목회의 여정을 계속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목양의 양떼인 성도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데 부끄러운 마음은 무엇일까요? 성도들을 바라보면 게으름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뭔가 바르지 못한 목양의 날들을 보낸 것은 아닐까요? 고당교회에서 은혼(25년)의 시간을 지냈는데 이혼(離婚)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더 충실하고, 기도에 더 열정을 쏟고,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삶의 모범을 보이도록 목양의 길을 달려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내세울 것 없는 목양의 길을 이렇게 글로 쓰면서 다시 한 번 회개의 기회로 삼아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 외침이 저의 남은 목양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옵니다.

최대중 목사

<고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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