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의 위치에 대한 시대별 역사 순으로 본 주장들은?
7세기 초반 세비야의 이시도르는 에덴동산이 극동아시아의 한 섬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중세 유럽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동쪽에 있었다는 근거로 예루살렘으로 여겼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십자군 원정에 나서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루살렘은 세계의 배꼽이며 이 세상 그 어떤 땅보다도 비옥한 낙원 중의 낙원이다.”
13세기 중세 유럽이 그린 대표적인 세계지도가 있는데 마파문디인 에프스토르프 지도이다. 가로세로 3.6m의 이 지도에는 에덴동산이 아시아 동쪽 끝에 그려져 있다.
14세기 만데빌의 여행안내서 ‘동방 여행기’에 따르면 비손은 갠지스강이다. 기혼강은 홍해 연안을 거친 나일강이다. 만데빌은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아틀라스산맥 끝에서 나와 홍해 연안을 거쳐 에디오피아 근방에서 지상으로 나와 다시 이집트 나일강과 지중해로 나온 이 강이 기혼이다. 기혼이라는 이름은 강물이 끊임없이 요동을 치기 때문에 터져 나온다는 뜻의 기혼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콜럼버스는 1498년 3차 항해에서 성경에 나오는 낙원이 베네수엘라에 속한 오리노코 강어귀에 닿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땅이 바로 에덴이라고 생각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다.
1) “에덴동산은 페르시아만 해저에 있다”
오늘날 미주리 주립대의 고고학자 주리스 자린스는 위성사진을 보고 에덴동산이 페르시아만 해저에 가라앉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또 오늘날의 페르시아만이 본래 대 빙하기부터 수천 년 동안 뭍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기후변화로 주전 6천 년경 강수량이 많이 증가해 강물이 불어났고 온갖 종류의 동·식물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자린스는 페르시아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뼈들이 당시 이 지역의 풍부한 자연환경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2) “위성사진을 이용해 연구한 결과 페르시아만 입구다”
또 보스턴대학교의 지리학자 파루크 엘바스는 위성사진을 이용해 연구한 결과 맨눈으로는 확인 불가능한 강을 발견했다. 위성사진에는 말라버린 강바닥이 뚜렷하게 드러났는데 사진 판독 결과 그 강은 오래전에 지금의 쿠웨이트 지역의 2/3와 이라크 일부 지역까지 뒤덮었다는 사실이 나왔다. 엘바스는 이 강이 비손 강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을 따르는 학자들은 에덴동산이 페르시아만 위쪽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3) “이스라엘 예루살렘이다”
비손과 하윌라의 순금을 강조한 관련성과 기혼샘(대하 32:30)과 유브라데(렘3;4-6) 이름의 강이 여리고쪽으로 흐르는 작은 강이 있고 또 이사야 27:12에 나오는 하수가 원어로 페라트 등을 증거로 주장하는 설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역사학자들이 역사지명이나 성경에 ‘기혼’으로 지명되는 지역이나 이름은 없고 유일하게 ‘기혼 샘’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에덴동산은 아라랏산에서 가나안 예루살렘 지역을 거쳐 시내 산 아래 이집트의 기혼 강과 비손 강으로 추정되는 나일강 하류 줄기를 지나서 구스 땅인 하윌라 지역까지 큰 지진대(지진판)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그 지진대의 중간지역인 예루살렘이거나 그 인근일 것으로 추정했다. 성경에도 지진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