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독교 교육 복음적 영향력 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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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교단의 큰 자랑 중의 하나는 기독교학교를 가장 많이 지닌 교단이라는 점이다. 1886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에 의해 설립된 경신학교를 비롯해 수백여 개의 기독교학교들이 본 교단에 속해 있다. 지난 140년 동안 이 땅의 기독교학교들은 일제의 탄압을 비롯한 온갖 역경 속에서도 기독교 교육의 사명을 감당해 왔다. 

기독교학교가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독교학교의 건학이념은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거나 과거의 종교수업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학교의 건학이념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복음적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적 ‘영향력’은 학교나 교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접촉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음과 학생의 삶의 자리를 연결시키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학교는 그런 기독교 교육적 노력을 통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만약 기독교학교가 평준화정책 이후에도 평준화정책 시행 이전 방식의 예배나 종교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복음적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교육에 동의하지 않거나 신앙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나 종교수업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학교의 예배와 종교수업은 이렇듯 불신자와의 접촉점을 갖고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목실이나 종교교사의 몫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지원체제를 구축함으로 다양한 자료와 매체를 제공하는 노력이 병행될 것을 요청한다.

기독교학교의 건학이념을 복음적 영향력으로 이해한다면 기독교학교에서의 기독교 교육은 예배나 종교수업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교과목의 가르침을 통해 기독교적 영향력이 끼쳐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예배와 종교과목이 충실히 이루어지더라도 각 교과목의 가르침에 있어서 무신론이나 반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복음적 영향력은 심각히 감퇴될 수밖에 없다. 교과목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이 가능할 때 기독교학교의 건학이념이 보다 강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학교 교사가 신앙과 교과를 통합할 수 있는 전문성을 지녀야 하며, 교사의 영성과 인격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학교의 경영이나 행정이 학생들에게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학교 전체 공동체가 기독교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며,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학교만을 다니신 분이다. 그는 평안도 간리에서 태어나 그 동네의 자작교회가 세운 진광 소학교라는 기독교학교를 다녔고, 그 후에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라는 기독교학교를 다니게 된다. 한경직 목사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교육은 오산학교에서의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당의 강의만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이 교육이었고, 오산학교라는 공동체를 통해 복음적 영향력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과 교육제도와 구조 속에 처해 있지만, 기독교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다시금 기독교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게 된다면 오산학교와 같은 복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을 배출하는 기독교학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믿고 여경지근의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마치 유니게와 바울이 협력하여 디모데를 양육했던 것처럼, 가정과 교회, 부모와 교회학교 교사가 함께 다음세대를 세움으로 소멸의 위기 속에 놓여있는 다음세대를 새롭게 세워, 한국교회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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