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素夏) 홍성원(1937-2008) 작가는 경남 합천 출신이다. 1964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빙점지대’가 당선되고 ‘세대’지에 ‘기관차와 송아지’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고려대 영문과 3학년 재학중에 등록금 준비가 어려워 군에 입대했다. 군대병영생활 중심으로 쓴 소설 ‘디데이 병촌’은 동아일보 현상모집 당선 장편소설이다. ‘디데이’는 계획공격개시 예정일을 뜻하는 군사용어다. 1964년도에 당선된 병촌생활중심의 소설로 현중위와 군의관 구대위와의 대조적인 성격과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많은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었다. 제대 후에 홍성원 작가는 소설만 쓰는 전업작가 활동을 했다.
이화여대 입구에 살다가 우리집이 영등포구(현 강서구) 화곡본동 61-114로 이사 갔을 때 근처 이웃집으로 홍성원 작가가 61-112에 가까이 살고 있었다. 서로 반갑게 만났다. 내가 가끔 홍성원 작가 집에 가면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밤새도록 소설을 쓰면서 담배를 태운 것이다. 나는 담배를 끊고 우리 화성교회에 나오라 권면했으나 대답이 없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웃으로 살며 그가 쓴 소설 이야기를 들었다. ‘세대’에 발표한 ‘육이오’는 6.25 사변으로 쓴 전쟁소설이다. 남북한 이념에 관계없이 소설을 써야하는데 정치적 이념이 창작의 자유를 방해했다고 했다.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평택전투에 처음으로 미군이 전선에 나오게 되었다. 김일성은 미군철수가 되어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남침하면 남한이 적화통일이 되리라 생각해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을 했다. 그런데 1개 중대 정도의 평택전투 미군 개입을 본 인민군은 전투를 쉬며 미군 개입을 두고 토론 논쟁이 사흘이 걸렸다. 이 3일은 미국 장면 대사가 급박한 한국전쟁을 막기 위한 트루만 미국대통령과 유엔에 활동시간을 준 혜택이 되기도 했다. 전쟁준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당시 한국국군은 끝내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한 것이다.
1950년 9월 15일 5천분의 1 성공 확률을 두고 맥아더가 감행한 인천해병대 상륙작전은 성공을 이루었다. 이어 수도탈환이 되고 북진통일을 향해 우리 국군이 진격해 간 것이다. 그러나 모택동이 보낸 중공군의 참전으로 소강상태를 이루던 전쟁은 155마일 휴전선을 그어놓고 6.25전쟁 총성은 멈췄다. ‘육이오’는 제목이 ‘남과북’으로 바뀌어 방송에 연출되어 나오기도 했다. 홍성원 작가는 대학졸업장을 갖기 위해 서라벌예대를 좀 다니다 중퇴했다. 나중에 활발한 작가활동을 인정 받아 고려대에서 홍성원 작가는 모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홍성원 소설은 인간의 의식을 가로막는 조직사회와 현실적인 불합리의 문제를 무거운 주제의식과 심리적 사실적 수법으로 소설을 써 나갔다. 특히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요 작품은 ‘타인의 방’ ‘프로방스의 이발사’ ‘주말여행’ ‘이인삼각’ ‘따라지 산조’ ‘막차로 온 손님’ 등이 있다. 언젠가 홍성원 작가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면서 “오형, 나 이제 담배 끊었소”라고 말했다. 나는 “더 기쁜 소식은 교회도 나가신다는 소식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건 아직”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고 김포 쪽으로 이사를 갔다. 소식이 궁금하던 차 화곡본동 시장 근처 조승호치과에 이치료 때문에 왔다면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런데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그로부터 좀 지난 후에 그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내가 남녀고교생들을 데리고 농촌봉사 다닌 강원도 횡성군 덕초현 마을로 어느 겨울 소설자료 취재차 나와 동행했던 추억이 선히 떠오른다. 그가 살던 집이 3층으로 새로 지었다. 그런데 1층 벽에 61-112 집번지가 붙어 있어 그 앞을 매일 지나며 별세한 지 26년째 되는데도 마냥 그립다. 순수하고 텁텁하던 갑장 문우 홍성원 작가를 다시 이웃으로 만나고 싶다. 그저 마냥 그립기만 하다. 부인과 3남매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