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에게는 ‘영적 기억력’이 있다. 이 기억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첫사랑’의 기억이다. 이 처음사랑의 기억을 잊어버릴 때 인생이 꼬인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너의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났던 은혜의 자리가 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전쟁을 앞에 두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저주의 자리를 찾은 결과 전쟁에서 패하고 비참한 죽임을 당한다. 성도의 꼬인 인생은 은혜의 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종살이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형 에서와 20년 전 꼬인 문제를 얍복강에서 기도함으로 풀었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돌아올 때 가축과 재산이 심히 많았다. 그래서 숙곳이라는 곳을 보니 들녘에는 푸른 초목으로 가득했고 가축을 먹이기에 최고의 조건이었다.
야곱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꼬였다.
창세기 33장 17절에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서 우릿간을 만들었다. 거기까지 좋았다. 문제가 여기서 잘못된 것이다. 창세기 33장 20절에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과연 이 제단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단인가? 이 제단은 하나님과 약속한 제단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겜에서 쌓은 제단을 원치 않으셨다. 야곱의 제단은 원래 ‘벧엘’이어야 했다.
세겜에서의 제단(창 33장)과 벧엘에서의 제단(창 35장) 사이 야곱의 딸의 디나 사건(창 34장)이 벌어진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 족장의 아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이것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족 남자들을 죽이는 살육으로 이어진다. 야곱은 큰 위기를 맞는다. 야곱의 아들들의 불의한 죄악으로 주변 족속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이들이 연합해 공격하면 꼼짝 없이 멸망하게 생겼다.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꼬인 인생을 풀어주신다. 창세기 35장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은 자신의 인생이 꼬인 원인을 깨닫게 된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집을 떠나 외삼촌 집으로 가던 중 돌베개 하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베개로 삼던 돌을 기둥 삼고 기름을 붓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서원한다. 창세기 28장 21절에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 그러나 야곱은 20년 후에 벧엘이 아닌 세겜으로 가서 그곳에 제단을 쌓은 것이다.
야곱은 벧엘에 돌아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야곱이 은혜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창세기 35장 9절에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야곱의 꼬인 인생이 회복된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의 한 여인이 우연히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이 여인은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여인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 남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이다. 물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 23절에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물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예배 이야기로 끝난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꼬인 인생을 은혜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푸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꼬인 인생을 푸는 비결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할 때 풀어진다. 당신의 예배의 자리를 은혜의 자리로 만들라! 당신의 꼬인 인생이 풀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정찬경 목사
<장수신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