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0:16) 이 말씀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받을 할례는 마음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고집을 세우지 않도록 하여라.”
‘껍질을 벗긴다’는 뜻은, 스스로 성결하게 하려고 마음속에 있는 원망, 불평, 용서하지 않은 마음, 더러운 생각, 음욕, 물욕 등을 베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에 대하여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이런 마음을 품고도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 자신이다. 더러운 생각, 용서하지 않는 마음, 원망, 판단, 음욕을 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서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할례는 세상의 나는 죽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또 ‘마음에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겠다고 하는 율법주의, 형식주의, 공로주의 신앙을 버리는 것이다. 간혹 우리는 주님께 대한 헌신과 섬김을 자신의 공로처럼 여길 때가 많다. 특히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한 헌신적 사역의 결과가 자신의 원함과 다르거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느낄 때, 혹은 다른 사역자보다 더 헌신된 사역을 했음에도 사역의 결과는 헌신에 비례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혹은 교회에 대한 헌신적 사역의 결과를 자신의 공로로 인정되기를 바라는데 그에 합당한 칭찬과 영광이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허탈해하며 “내가 어떻게 수고했는데… 내가 모든 것을 드려 섬겼는데… 최선을 다해 섬겼는데…”라고 억울해하며 주님의 공정한 보응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주인 되신 주님을 진정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수고와 애씀과 공로를 붙잡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아간다. “주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으면 저는 갈 곳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는 고백은 마음에 할례를 받았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신앙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면 신앙은 막다른 골목을 맞이하게 되지만 주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신앙은 열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만 의지해야 한다.
* 종교는 우리의 내면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의 내면을 바꾼다.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은혜의 삶을 살게 된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세우지 않게 된다. 나는 죽었기 때문에 오직 순종만 있는 것이다. 성도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앞에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인 요단강과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대훈 목사
<포항대송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