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모닥)불이 타오르는 것을 멍하게 보고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는 것입니다. 어떤 글에 의하면, 불멍은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고 뇌를 휴식하게 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도록 해주고,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편안해지는 느낌과 이완의 효과를 준다고도 합니다. 또 불은 우리에게 안전과 보호 효과를 주고, 식량 확보, 사회적 연대와 문화적 유산을 상기시켜 준다고도 합니다.
성경에 불멍이라는 말은 당연히 없지만, 불을 통해 역사하시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어느 날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 이르렀는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꺼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다 타서 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 떨기나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궁금하게 여긴 모세가 가까이 다가가니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2)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들어 쓰시기 위해 떨기나무의 불꽃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로 사양할 의사를 표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을 굽어살피시며 두 번 세 번 설득하심으로 그를 들어 쓰셨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으며, 십계명을 받는 등 위대한 지도자가 됐습니다.
또 다른 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습니다.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고백했던 베드로 역시도 막상 주님께서 잡혀가시자 두려움에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모닥불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눅 22:55-56)
베드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눅 22:62)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 이후로 모닥불만 보면 회한과 악몽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오라 하시고 모닥불에 생선을 구워 함께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아픔을 아시고 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이후로 베드로는 모닥불을 볼 때면 사랑하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행복해했을 것입니다.
불을 통해 모세를 크게 쓰시고, 불을 통해 베드로의 연약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 사랑의 하나님, 치유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더불어 이 글을 읽으시는 장로님들께도 성령의 은혜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이강욱 장로
<광주노회 장로회장, 영광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