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물질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과학은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야심차게 약속했다. 그 결과 인간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줬다. 겉으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학은 천지를 개벽시키고 남으리 만큼 찬란한 물질의 시대를 이뤘다. 그 하나가 4차 산업이다. 인공지능인 로버트가 인간을 대신해 일을 척척 해내고 있다.
그간 인간이 가장 선호해왔던 일자리는 의사와 법조계였다. 의사의 일은 이미 시행되었고 판사직은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연구진이 그 과정을 마치고 결과만 남아 있다. 또 드론(drone)이 등장해 신무기화 하고 있고, 심지어 음식 나르는 일자리까지 모두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후한서 송홍전(宋弘傳)을 통해 살펴보자. 송 재상은 광무제에게 그의 누이동생과 재혼할 수 없음을 앞에서 말했지만, 다시 구체적으로 풀이하고자 한다. ‘糟糠之妻 不下堂이요, 貧賤之交 不可忘이라” 했다. 이 글은 ‘지게미 조(槽)’자와 ‘겨 강(糠)’자를 써서 지게미와 겨를 먹고 살아온(之) 처(處)라는 뜻이다. 어조사 지(之)자는 일정한 뜻이 없고 앞 뒷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말의 고리 역할을 한다. 송홍(宋弘)이 장가를 들 무렵 혹독한 가뭄이 3년간이나 계속된 관계로 가난은 극에 달했다. 당시에 품삯은 돈이나 곡식 대신에 지게미와 겨를 주었기에 송 재상의 부부는 ‘결혼 초부터 지게미와 겨를 먹고 살아온 처’라는 뜻이다. 다음 말을 보자. ‘不下堂’이라 했다. 당(堂)자는 집 당자로 “집 밖으로(不下堂) 내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지게미와 겨를 먹고 살아오듯이 온갖 어려움을 함께 나눈 처인데 어찌 집 밖으로 내쫓을 수 있으며, ‘貧賤之交 不可忘’은 빈곤할 빈(貧)자와 천박할 천(賤)자, 그리고 사귈 교(交)자를 써서 빈곤하고 천할 때 사귄 친구를, 잊을 망(忘)자를 써서 어찌 잊겠는가 라고 해 광무제의 누이동생과 재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재상직을 사직했다. 그 뒤에 고향으로 내려가 문중선산 뒤쪽을 일구어 평생토록 농민으로 살았다. 이 글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읽고 리포트(report)로 작성, 제출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결혼 초 아내에게 송홍전을 말해 주었는데 결혼 7년이 지난 어느 날 밤이다. 외박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죽어 입관은 했으나 남편의 얼굴이나 보고 떠나보내려고 관을 덮지 않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뜻밖의 사별이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 슬픔에 몸부림치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그간 아내에게 무관심하게 대했던 탓으로 이런 꿈을 꾸었구나 생각하며 전등을 켰다. 아내는 평온히 잠자고 있었다. 너무 소중한 얼굴이다. 나는 즉시 서재에 가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송 재상처럼 ‘조강지처’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고 나는 평생토록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한 편지 내용이다. 송홍은 장원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이처럼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지난날 아내의 노고를 잊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릴 재상직까지 사직했으니 얼마나 존귀한 정신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때 잠에서 깬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 하려고 발걸음을교회로 향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 동안 방금 전 꿈결이 떠오르자 진정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