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신랑의 곤경을 한시 지어 모면해 준 큰처남의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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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지리산 기슭 경남 마천에 살 때였다. 고모 아주머니 두 처녀가 시집 가던 모습을 잘 지켜보았다. 마당에 덕석을 깔아 두고 신랑 신부 맞절을 시켰다.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은 늠름하게 서 있고 신부는 연지 곤지 찍고 비녀 꽂은 낭자 머리로 부끄럽게 신랑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가 살던 도촌 마을 고모에게 장가온 고모부나 아주머니에게 장가온 아저씨도 신랑으로서 동네 청년들에게 베로 된 밧줄에 다리가 묶인 채로 방망이나 마른 북어로 발바닥이 심히 아프도록 맞았다. 왜 남의 동네 처녀를 데려가려 하느냐 따지며 여러 청년들이 신랑을 괴롭히면 장모로 하여금 우리 사위 그만 풀어 달라며 안주가 걸직한 술상이 안방에 차려진다. 한참 대화 속에 기쁜 분위기를 이룬다.

고모나 아주머니는 가마 타고 시집 가는 모습을 봤을 때 두분 다 “아이고 오매(어머니) 없이 우째 살꼬” 말하며 가마 안에서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모 오경남, 아주머니 강두김 두 분이 처녀시절 도촌 뒷산인 곰달래산으로 산나물 뜯으러 갈 때 초등학교 어린이 나를 함께 데려 갔다. 내가 비록 어린이라도 사나이라 생각되어 든든한 생각으로 동행시켰던 것 같다. 어질고 착하기만 하던 농부의 아내 고모나 아주머니도 하늘나라 가신지가 여러 해 되었다. 그리운 고향 어른들이다.

내가 함양읍내 함양중학교 다닐 때였다. 6.25 전쟁 중에 어렵게 공부할 무렵 키가 자그마한 역사 선생이 이야기 하나를 해 주셨다. 육지에 사는 한 총각이 어느 섬마을로 장가를 갔다. 청년들이 신부 집으로 몰려 왔다. 베로 된 밧줄로 묶어 발바닥을 방망이로 때려주기 전에 유식한 청년들이라 신랑에게 트집을 잡기 위해 시짓기놀이부터 시작했다. 신랑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은 청년들은 저마다 자기 몫의 시를 지었다. 신랑 차례가 왔다. 신랑은 시 창작 실력이 없었다.

난처했다. 곤경에 빠져 있는 매제를 큰처남이 도와 줄 생각이 있었다. 유식한 선비였다. 큰처남은 신랑을 보고 “아침에 뭘 먹었나?” 신랑이 낙지 곶감 등을 먹었다고 하자 “이 사람아 그게 다 시야, 바로 이런 시를 지으려 했구먼” 하면서 큰처남은 칠언(七言) 절구로 다음과 같은 한시(漢詩) 한 수를 읊었다.

석화낙지한선발(昔花落地恨先發) 꽃이 땅에 떨어져 오래되니 먼저 핀 것을 한탄하고, 조개고지신어다(鳥介古枝新語多) 새가 옛 나무 가지에 앉으니 새 말이 많도다.

이런 좋은 시를 지으려고 그렇게 한참을 생각했던가? 칠언(七言) 절구의 정감 깊은 기발한 한시를 큰처남이 순간적 기지로 창작했다. 난처한 곤경에 빠진 신랑을 구해준 큰처남의 마음씨가 참으로 후덕하고 아름답다. 신랑도 스승같은 큰처남 누이동생을 아내로 맞게 되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천생 짝궁으로 사람은 누구나 백년가약의 부부로 잘 만나야 할 것이다. 

사람의 기초 행복은 가정에 있다. 칠언(七言) 절구의 한시 한 편을 가르쳐 주시려고 구수하게 이야기해 주시던 그 함양중학 역사 선생님 한정없이 그립다. 한중환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훌륭한 선생님들이 다 하늘나라 가셔서 추억 속에 그립기만 하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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