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장에 나병이 든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있다.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드는 이스라엘 땅에서 잡혀온 소녀 하나가 여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왕기하 5장 3절에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은 여종인 소녀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갔고 결국에는 나병에서 치료를 받는다.
나아만의 꼬인 인생이 풀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엘리사라는 은혜의 사람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 명의 꼬인 인생이 풀어진 사람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다. 나병을 고침 받고 돌아온 나아만이 이 소녀를 어떻게 대했을까? 성경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추론이 가능하다. 아마 자유의 몸이 되었을 수도 있고, 더 좋게 풀이한다면 나아만이 수양딸로 삼았을 수도 있다. 나아만 장군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소녀까지도 은혜의 사람을 찾음으로 꼬인 인생이 풀어진 것이다.
신앙은 은혜의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열왕기하 2장에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성읍의 아이들이 나와서 엘리사를 조롱한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라는 말에 엘리사가 돌이켜 그 아이들을 저주하니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사십 명을 찢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라는 말이 엘리사를 조롱하기 전에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이야기를 조롱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너도 한번 올라가 봐라, 너도 한번 올라가 봐라” 엘리사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은혜의 사람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꼬이게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둘씩 짝지어 보내실 때 마태복음 10장 11절에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예수님은 “합당한 자”를 찾으라 하신다. 합당한 자가 어떤 사람인가? 은혜의 사람이다.
어느 날 여집사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친정어머니가 쓰러져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긴급한 기도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기도 중에 이 말씀에 감동이 되었다.
사도행전 4장 29절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그리고 이 말씀을 문자로 보내주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자고 했다.
두 달이 지났다. 환자는 의식 없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병원 측에서도 깨어날 가망이 없다는 의견에 자녀들에게 장례식을 준비할 것을 권했다. 그러던 중에 집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깨어나셔서 하루 만에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머니는 재력이 있으셨다. 그래서 어려운 미자립교회 많은 목사님들을 도우신 분이다. 권사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많은 목사님들이 의식도 없는 권사님을 매일 찾아와서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다.
“종들로 하여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말씀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은혜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야고보서 5장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하나님은 은혜의 사람들을 통해서 함께 일하신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지금도 꼬인 인생들을 풀어가신다.
사도행전 9장에 욥바의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죽었다. 그런데 죽은 자를 놓고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와 달라 청한다. 인생이 꼬였을 때 “은혜의 사람을 찾으라”. 결국 베드로가 기도하고 손을 내밀어 다비다를 일으켜 살아나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사람을 찾으라. 문제가 풀어질 것이다. 꼬인 인생이 풀어질 것이다.
정찬경 목사
<장수신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