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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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성장하는 제자들 지켜보는 기쁨

낯선 무대에서 제자에게 전한 진심 어린 응원

제자의 입상 통해 작은 역할 감당함에 감사

화초를 가꾸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성장한 모습을 대면하는 것은 스승들의 가장 큰 행복이고 보람이다. 지금 교회에서 만나는 청소년, 청년들도 믿음 생활을 잘 하면서 성장해 미래 사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귀한 일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사업상 한창 해외 출장을 다니던 1991년이었다. 스위스 취리히의 몬타나 호텔 로비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소망교회 고등부에 출석했던 양고운이라는 여학생으로 지금은 경희대학교 교수이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됐다. 그때는 서울대 음대 1학년이었다.

세계적 명성의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려고 어머니와 둘이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하는 중이라고 했다. 호텔 아침 식탁에서 함께 기도하고 밥을 먹고 헤어졌는데 콩쿠르 예선이 열리던 날 나도 마침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었다. 토요일이라 특별한 일이 없어서 지도를 보니 밀라노에서 제노바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제노바로 향했다.

파가니니가 출생한 아름다운 항구도시 제노바 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가는데 택시운전사와 말이 안 통했다. 

어디론가 데려가기에 보니 경찰서였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경찰관이 무전기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가 어디서 열리는지 알아봐줬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공연장에 도착해 보니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산책하다가 고운이 어머니를 만났다.

“왜 혼자 나오셨어요?”

“네, 콩쿠르 전에는 아주 예민하니까요. 장로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머니는 호텔로 같이 가서 고운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순수 국내파로 국내에서만 공부한 고운이가 해외에 나와 첫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얼마나 긴장이 될지 짐작이 갔다. 호텔에 가 기도를 해주니 고운이와 엄마는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도 기도를 하다가 같이 눈물을 흘렸다.

“뭐가 그리 걱정되니?”

“선생님! 낯선 무대에 올라가서 실수하면 어쩌죠? 제 실력대로 연주도 못해보고 떨어질까봐 자꾸 걱정이 돼요.”

“그러면 네 순서 전에 가서 좀 보지 그러니?”

“그럴 수가 없어요. 징크스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연주하다 틀리는 것을 보면 저도 똑같은 부분에서 틀리게 돼요.”

고운이뿐 아니라 연주자들은 지정곡을 연주할 때 다른 경쟁자가 연주하는 것을 안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선 연주자가 틀리면 그 부분에서 자기도 틀릴까봐 신경을 쓰다보면 긴장이 더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연주 전 준비를 도와야 할 고운이 어머니가 왔다갔다 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내가 봐주면 되겠구나!”

“정말요? 선생님께서요?”

그렇게 해서 오후 내내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관찰했다. 곧 공통점이 보였다. 다들 낯선 무대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 쪽으로 서고, 두 연주곡 사이의 비는 시간을 잘 넘긴 사람이 안정된 연주를 했다. 특히 한 곡을 연주한 뒤 박수가 나오지 않게 제스처를 취하거나, 혹은 일부러 박수가 나오도록 유도하는 등 적절하고 여유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면 지정곡과 자유곡 연주가 물 흐르듯 진행되고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좋아 보였다.

그러지 않고 무대에 올라서 엉뚱한 방향으로 서거나 두 곡 사이에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린 연주자는 눈에 띄게 흔들렸고 때로는 흐트러진 분위기를 못 이기고 중도에 틀려서 포기하고 무대를 내려오기도 했다.

나는 종이에 무대와 객석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 위치, 심사위원들의 자리와 연령대, 옷차림, 조명이 떨어지는 위치까지 그려서 고운이에게 설명해주었다. 객석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앉아 있는지도 설명했다. 조명이 내리비치는 중앙에 서서 심사위원과 객석 방향이 3대 7이 되도록 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비전문가의 의견일 뿐이었지만 고운이는 “선생님께서는 이런 무대를 처음 보신다면서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청해주었다. 

아마도 패션 사업을 하면서 새로운 상황을 파악하고 즉시 분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고운이 덕분에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어 즐겁게 몰입한 덕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기차 시간 때문에 고운이의 연주를 못보고 밀라노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에 와 있는데 고운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선에 진출했어요. 선생님 덕분입니다!”

물론 고운이의 실력에 따른 결과였지만 내 덕분에 긴장이 풀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는 덕담이었다.

본선 시간이 며칠 후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였다. 고등부 교사들에게 전화해서 그 시간에 자지 말고 모두 고운이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고운이는 이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한국 신문과 TV방송에 크게 보도됐다. 한국 국적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세계적인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역사적인 순간에 내게 작은 역할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가슴 뜨겁게 감사드린다.

2015년 3월 1일에 의미있는 모임이 있었다. 옛날 내가 신촌장로교회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던 시절의 교회학교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1기, 2기 식으로 기수를 만들어서 인연을 이어오다가 오랜만에 함께 모이면서 나와 다른 교사 한 명을 초대한 것이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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