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믿음] 애국하는 마음으로 구순의 삶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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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국가 존립의 기본요소는 국토와 국민과 통치권이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고 또한 국민은 국가에 대한 통치권에 바르게 순종하며 모든 일에 선하게 판단해서 자신의 삶을 국가에 헌신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원칙으로 삶을 가지려고 어릴 때부터 노력해 왔다.

왜정시대 농촌에서 태어나고 국민학교 시절에는 내 나라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친구와 남들이 모르게 담밑 같은 외진 곳에서 우리말을 하다가 적발되면 수업시간에 교실 뒤에서 손을 올리는 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국민학교 5학년 시절, 8·15 해방이 되었다.

학교 뒤 골목길에서 크게 외치는 “만세”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는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모두 귀가하라고 했다. 집으로 오는데 또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모여 해방되었다고 기쁜 표정들로 “만세”를 외쳤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자 국가의 권력을 되찾아, 학교에서는 우리 교육을 바르게 가르쳤으며 그 후 졸업을 하고 서울에 있는 중동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생 67명 중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 학생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7명뿐이었다.

중학교 시절, 6·25전쟁 발생

농촌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서울에 있는 중학교를 어렵게 입학했는데 재정적 문제가 되어 자취생활을 하면서 사무실 급사로 전전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이모 집이 인왕산 밑 옥인동에 있어 그곳에서 하숙하며 이종 인구 형과 함께 방을 쓰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 25일 북에서 남침 6·25전쟁이 발발했다. 서울 상공의 비행기 소리와 대포 소리가 나더니 다음 날은 한강 다리가 폭격에 끊어지고 온통 소란한 가운데 있었다. 나는 이모집 지하에 숨어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삼일째 되던 날, 서울이 온통 조용했다.

그런데 골목길에서는 서울이 해방되었으니 중학생들은 모두 등교하라고 외치면서 다니고 있었다. 나는 마루 밑 지하에서 나와 이모한테 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가보니 학교 운동장에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선생님과 군인들이 있었는데 군인이 마이크를 들고 각 반의 반장들은 앞으로 집합하라고 했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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