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향기] 구순(九旬)의 전도법… 사랑 실천으로 복음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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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비결은 새벽기도, “마지막 날까지 간증하며 구원의 확신 전할 것

송영식 장로

송영식 장로(충무교회 원로)

올해 92세인 송영식 장로는 군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1만 번 말씀을 전했다. 90세가 넘어서도 집회 간증, 건강 및 웃음 강의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매일 5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주변 지인들은 여전히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피부가 환한 송 장로에게 건강의 비결을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송 장로는 “집사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가 제1비결”이라고 답한다. 지난 11월 7일 본사 르비딤홀에서 만난 송 장로는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오늘 하루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건강해진 기분”이라며, “오늘도 새벽기도를 드리고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에너지 넘치게 고백했다.

첫 아이 요셉

청주 산골이 고향인 송영식 장로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학교에 다녔다. 당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장 교사의 설교는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여러분의 죄 주머니는 각자의 머리 뒤에 달려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죄는 잘 보이지만 내 죄는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지금도 송 장로는 교회 성도들은 물론 만나는 모든 이들을 긍정과 사랑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송 장로는 17세에 주일학교 봉사를 시작, 19세에 집사가 된 후 21세에 군 입대했다. 이 무렵 목회자를 꿈꿨지만, 1950년대 초반 기독교인 동역자들과 무역회사를 시작하게 됐다. 24세에 동갑인 백근난 씨와 결혼하며 돈도 모으고, 서울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큰 시련이 앞다퉈 찾아왔다.

아내가 출산한 첫 아이 요셉(애칭)이 난산으로 뇌를 다치면서 병명도 모른 채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녔다. 설상가상 송 장로는 위암에 걸렸다. 당시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시절이었다. 요셉이 세 살, 송 장로가 27세 때 송 장로는 1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하나님께 3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성령체험 후 오직 예수

1960년 1월 1일 송 장로는 변계단 권사 복음선교회에 아내와 요셉과 함께 요셉의 병 치유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당시 변계단 권사는 “어린아이가 무슨 믿음이 있겠느냐”며, “부모의 믿음으로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요셉의 병 고침만 생각했던 송 장로는 자신의 위암 고침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첫날부터 3일 동안 세 번의 안찰기도를 받게 됐다. 세 번째 날, 송 장로는 그동안 아픈 통증이 모두 사라지고 입에서 감사가 쏟아지는 성령체험을 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내 병이 모두 나았다! 아멘!” 기도하고 나니, 찬양 “기뻐 뛰며 노래하겠네”가 절로 나오면서 전도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게 됐다. 오랜 시간 흰죽만 겨우 먹을 수 있었던 송 장로는 그날 바로 갈비 6대를 먹을 수 있었고, 그 후 지금까지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 무사통과하고 있다.

건강을 되찾은 송 장로는 무역업을 하면서 일반대학 및 신대원을 졸업하고, 성도로서 간증을 바탕으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송 장로는 32세에 본 교단 서울노회 주일학교연합회 회장을 맡아 4년 동안 연임했다. 당시 영락교회에서 열린 여름강습회를 통해 1천500명의 교사 앞에서 강연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송 장로는 1975년 서울노회 중고등부연합회 회장, 1985년 서울노회 재정부장, 1995년 서울노회 유지재단 감사 이사, 1996년 총회 사회부 실행위원, 1998년 총회 회계, 그리고 전국남선교회 전도단장, 전국장로회연합회에서 회계, 총무,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교회 안팎에서 전도 와 함께 이웃 사랑·나눔을 실천했다.

아내 고 백근난 권사와 든든한 네 형제와 함께.

아낌없이 나눈 부부

송 장로는 1960년대에 서울 연희동 집을 1천350만 원(현재 가치 약 10억 원)에 구입했다. 그 무렵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작정할 기회가 생기자, 송 장로는 통 크게 1천만 원을 약정했다. 몇 년 후 보니 약정 헌금에 더해 무기명으로 건축 헌금으로 드린 금액이 집 한 채 값과 비슷했다.

이후 송 장로는 1975년 충무교회(당시 고 박종렬 원로목사, 이기엽 목사 시무)에서 장로 장립했다. 장로가 된 이후 어느 해 연말에 송 장로는 연희동 동사무소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무기명으로 쌀 130가마를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쌀을 이웃에 보내고 한 명이라도 주님을 믿게 되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스스로는 쌀을 보낸 보람만 느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후 동장으로부터 감사의 전화가 왔고, 그때 송 장로는 “나는 하나님의 택배원이고, 보내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것이 보람입니다”고 답했다.

송 장로와 아내는 무기명으로 교회 5곳을 헌당하고, 교회 및 목회자,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섬겼다. 아내는 신혼 초, 집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교회 사택에 냉장고를 선물로 보낼 정도였다. 후에 송 장로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우리를 위해 땀 흘리며 설교한 목사님이 시원한 물 한잔 마셔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2006년 10월 6일 월요일 아침, 송 장로의 아내는 새벽기도를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6년간 후유증을 앓던 아내는 82세 나이로 하늘로 떠났다. 그날 송 장로는 전국장로회연합회 수련회 차 제주에 있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아내가 천국에 있음을 확신하며 부지런히 신앙생활에 힘쓰고 있다.

“아내는 요셉 외 4형제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며 교회와 목회자, 이웃을 넉넉히 섬겼습니다. 저는 재산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관리권만 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지만, 하나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습니다.”

1967년 서울노회 주일학교연합회 정기총회에서 회장 송영식 장로(앞에서 두 번째 줄 안경 착용).

두 가지 큰 깨달음

송 장로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젊은 시절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력, 건강, 사랑의 은사, 베품의 은사, 가정의 화목 총 5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뿐, 죽을병도 낫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젊은 시절 첫 아이 요셉의 병과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순간 시편 119편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는 말씀을 저절로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요셉으로 인해 성령체험을 하고, 병이 낫고 구원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니 그 후의 삶은 예수에 미친 자로 살게 됐습니다. 지금도 예배하고 기도할 때면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이 흐릅니다.”

송 장로는 은퇴 장로가 된 후에도 90세까지 교회에서 대표기도 했다. 당시 박종렬 원로 목사는 은퇴했어도 기도할 수 있는 장로들을 강단에 세웠다. 기도 횟수만큼이나 복음을 전한 횟수도 셀 수 없다. 송 장로는 군 입대부터 지금까지 강사로서 말씀을 전한 집회가 1만 회에 달한다. 그동안 유치장 전도, 군 선교, 경로대학, 기업체 및 은행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복음을 전했다. 지금도 송 장로는 교회 및 단체에서 말씀을 부탁하면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며, 성령이 주시는 감동으로 설교 문을 작성한다.

“집회에 가서 현수막을 보면 집회 주제와 제가 준비한 말씀 본문이나 제목이 딱 맞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참석자들로부터 ‘어떻게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말씀을 전했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제가 더 감동되고, 감사한 일이지요.”

예수 사랑을 실천으로

얼마 전, 한 지인이 송 장로에게 미국에 집회를 하러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송 장로는 “당연히 갈 수 있다”며, “비행기 타고 가다가 죽으면 천국이랑 가까운 곳에서 죽어서 아멘이다. 92세까지 감사로 살았는데 천국 가는 것이 두렵겠느냐”고 답했다.

현재 송 장로는 본인을 위해 돈 쓰기는 아끼면서도 교회에 장기결석 성도가 있는지, 혹시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가 있는지 살피며 식사비용을 선물하며 안부를 묻고, 작은 교회 사모와 목회자를 위해 최고의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돈의 유무가 아닌, “예수님을 바보처럼 믿고 예수님의 사랑을 바보처럼 전하기 위해서”이다.

송 장로는 지금도 건강을 위해 공부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무대로 말씀 전하고, 웃음 및 건강강의 하기를 꿈꾼다. 뿐만 아니라 장학재단 및 요양병원의 비전도 품고 있다. 내일도 오늘처럼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는 송 장로는 “꿈과 비전을 품고 있는 한 노인이 아니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지난 10월 대한민국애국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한 송영식 장로.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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