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 부활 신앙의 기원과 부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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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기원과 내용 <3>

부활 신앙이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날로 더 심해지는 고난과 불의의 경험은 신앙의 위기를 초래했고, 급기야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질문, 곧 신정론(神正論) 문제를 초래했다. 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항상 장수와 자손의 번성을 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한 사람들은 성공하고, 선한 사람들은 고통을 겪기도 한다. 

특히 외세의 잔인한 통치 아래서 하나님에게 신실했던 사람들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질 보상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모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죽음 후의 개인의 생명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다. 

이처럼 죽은 자들과 죽음 후의 보상에 대한 믿음은 극심한 고난의 경험 속에서 자라났다. 이런 믿음은 마카비후서(주전 160년)에서 발견된다. 

7장에서 한 어머니와 그의 일곱 자녀들은 율법을 위반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문을 받고 잔인하게 죽어가기를 원한다. 극심한 억압과 박해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함과 능력에 대한 믿음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낳았다. 하나님은 율법을 신실하게 지킨 자들을 멸망하지 않게 할 것이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왕이고, 특히 모든 인간의 생명의 창조주다. 여기서 부활의 희망은 가족 관계의 회복에 대한 믿음과도 결합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로운 자들만이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은 머잖은 장래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는 부활 신앙과 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특히 묵시문학(에녹1서, 모세 묵시록, 열두 족장의 유언서, 에스라4서, 바룩2서)에서 부활 신앙은 폭넓게 설명된다. 여기서 자주 반복되는 전형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땅이 열리고, 바위가 터진다.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혹은 지하 세계에서 나온다. 육체는 변형된다. 의로운 자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다시는 늙지 않는다. 그들은 천사와 별과 같다. 악한 자들은 험악한 얼굴을 보이고 있다.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는지, 아니면 오직 의로운 자들만이 부활하는지에 관해서는 묵시문학이 통일된 견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여하튼 부활의 희망은 몸과 영혼의 재합의 형상으로 표상되지 않았다. 이것은 유대교에서 낯선 생각이다. 오히려 이러한 희망은 전인(全人)과 그의 생명의 새로운 창조로 표상되었다. 새 창조는 자궁 속에 있는 몸의 첫 출생과 유사하다.

하지만 죽은 순교자들의 부활이 지체되는 경험은 부활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대한 다양한 표상을 낳았다. 이로써 스올은 세분화되었다. 스올은 서쪽에, 곧 해지는 곳에 있다. 그곳에는 서로 다른 네 개의 동굴이 있는데, 죄인들은 죄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어두운 방에 들어가고, 의인들은 밝은 방으로 들어간다. 이 방은 시원한 샘에 둘러싸여 있다. 랍비들은 사후에 곧바로 심판이 일어나고, 심판에 근거해서 인간들은 두 종류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다. 한 부류는 에덴 낙원(눅 23:43)으로 가고, 다른 부류는 저주의 장소로 간다. 의인들의 거처에 대한 다른 표상도 유행했다. 예컨대 의인은 하나님의 제단 아래 대기하거나(계 6:9)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눅 16:19-29)

예수 시대의 유대교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은 이미 친숙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었지만, 오래된 신앙의 전승만을 믿던, 신학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거부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부활을 부인한 까닭은 죽은 자들에 대한 잘못된 관심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보다는 부활이 갖는 혁명적 특징 때문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 신앙이 과격한 젊은이들로 하여금 성전 안에 있는 상징물을 공격하게 자극함으로써 로마와 충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한다고도 생각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부유한 귀족층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신건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전)

•생명신학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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