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타협 없이 ‘오직 예수’
“예수천당”만 외치는 순교자의 진정한 충성된 삶
지금도 서울역 앞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들려온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왜 그럴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라는 이사야의 말과 같다. 어떤 이들은 지금 그런 소리로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치는 이들은 사명으로 외친다.
최권능 목사에게는 복음 전파와 진리를 위한 싸움만 있었다. 다른 복음을 강요하는 일제 앞에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봉석 목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그의 역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봉석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서다가 주기철 목사, 박관준 장로, 박의흠(朴義欽) 전도사, 서정명 등과 함께 순교했다.
76세라는 고령에도 조국의 교회와 이 민족을 가슴에 품고 옥중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나아갔다. 최봉석, 그는 온몸으로 복음을 전하고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요, 복음 전파와 선교와 교회 개척에 앞장서고, 신사참배 강요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역사 앞에서 살았던 예수의 확실한 제자였다.
순교자의 삶은 항상 주님을 향한 충성으로 살았다. 최권능 목사는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을 욕하지 않고 계속 “예수천당”만을 외쳤다. 이것이 순교자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예수의 비유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셨다. 최봉석 목사에게는 전도의 달란트를 주셨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세 번씩 졸업을 못할 정도였으나 자기는 맡은 달란트를 위해서 살았다고 했다.
최봉석 목사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특별한 목사였다. 한 교회에 머물지 않고 전도해서 교회를 세우고는 지도자를 교육해서 맡기고 또 다른 전도지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가 진정 순교자라 할 수 있는 점은, 그렇게 자기를 핍박하고 매를 때리고 죽기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일본인이나 일본인 앞잡이로 이용당했던 한국인 형사들도 결코 미워하지 않고, 그들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할 사람으로 여기고 끝까지 전도했던 전도자였다는 것이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호칭이며, 면류관인가! 최권능 목사는 예수의 사랑으로 불붙은 자였다. 그는 자기의 생명이 붙어 있으면 그 전체를 예수의 삶으로 알았다. 그는 예수를 위해서 죽고자 했고, 예수를 위해서 살고자 함으로 스스로 무의식까지 예수와 일체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참으로 예수뿐이었고, 믿음의 그 무한한 환희를 안 전도자였다. 그는 지식을 애써 구하지 않았다. 예수를 전하는 확성기가 되면 그만이었다. 예수를 전하는 기계로도 족한 것이었다. 전 생명을 바쳐 구원의 생명이 되고자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전도자가 되었다. 새벽 공기와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생명의 입김, 전도로 그 빚을 갚고자 한 자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