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그 실천의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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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회 총회는 작금의 사회, 국가, 교회, 교계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주제로 내걸었다. 이미 총회의 주제 해설집을 통해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바, 짧은 소견이나마 그 실천의 기조를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중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본질의 이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 하면, 외형적인 표적, 또는 사건들에 집중하나,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예수님의 사역과 얼마나 같아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대중집회, 전도집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에 집중된다. 이는 성령의 능력을 증언하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을 계시는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일”에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로 답하셨다. 그리고 그 권능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기에, 성령의 능력은 곧 전도의 능력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말씀에 의해 나타난 성령의 능력은 1)기도 2)성령의 임재 3)아름다운 공동체 형성(초대교회)으로 이어지며, 이 아름다운 공동체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셨다”고 증언된다. 

대대적인 선교운동, 전도운동 등등 이벤트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은 당시에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게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로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그 공동체의 사람들은 바로 1)회개한 사람들 2)예배하는 사람들 3)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난 권능의 현존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의 원형적 모습을 알 수 있으며, 교회의 부흥은 바로 그 초대교회의 원형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청교도의 큰 지도자 존 코튼은 교회에 대해 “초대교회는 살아있는 교회, 중세교회는 죽은 교회, 루터의 개혁운동은 살아나는 교회”로 갈파했는데, 바로 우리의 부흥은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로서 존재했으나, 그 온전함이 오래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로 존재키 위한 몸부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첫째, 교회 안에서 거짓과 위선을 용납지 않았으며, 둘째, 금과 은의 덫에 빠지지 않았으며, 셋째, 고난을 극복했으며, 넷째, 일보다는 말씀과 기도에 전심했으며, 다섯째, 이방을 포용했고, 여섯째, 선교의 비전을 공유했고, 일곱째, 분열과 다름을 극복하는 관용이 있었다. 

짧은 지면에 이를 다 논하기 어려우나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의 기본, 그 기저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중지를 모아 이스라엘의 일이 아닌, 세상의 일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내어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는 부흥을 이루어야 하겠다. 이것이야말로 사도시대로부터 교부들, 어거스틴, 프란체스코, 후스, 루터, 칼빈, 본 회퍼, 그리고 주기철, 손양원으로 이어지는 부흥의 맥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 맥락 속에서 부흥의 로드맵을 구성해 진정한 부흥이 한국교회에 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제언하는 것이다.

정영택 목사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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