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미국에서 출간 직후 화제가 되어 75개 이상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베스트셀러 소설이 있습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입니다. 이 책은 영화로 제작됐고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추천도서로 소개까지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까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이니치’(재일교포)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일곱 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갔지만,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명문대학에 입학해 변호사가 되어 한인 이민 사회에 성공적 모델이 됩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됩니다. 대학 시절 선교사님을 통해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남편을 따라 도쿄에서 4년간 살 때 수많은 한국인을 만납니다. 이때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듣고 소설을 쓰자 화제작이 됩니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이 고통을 받았던 것처럼 라합도 아픔과 슬픔이 있던 여인입니다. 직업은 기생입니다. 라합이 믿음의 사람이지만 누가 말해도 그녀는 창녀입니다. 창녀는 히브리어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카테샤’는 바알 종교의 사제를 돕는 창녀로 사회적 신분이 있었고, ‘조나’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신분에 속한 비천한 창녀입니다. 라합은 조나에 속합니다. 부모가 경제적인 이유로 어릴 적 팔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이름에 사용된 ‘라’는 이방 신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고, 고통받던 이방 여자입니다. 여리고 성안에 있던 라합의 거처는 사회적으로 업신여김과 사람들이 경멸한 곳입니다. 다른 장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곳으로 정탐꾼은 유숙하려고 그곳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여리고 왕이 그들을 잡으러 왔고 기량을 발휘한 라합 덕분에 정탐꾼은 살게 됩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라합이 생명 걸고 정탐꾼을 도운 이유입니다. 그녀는 소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뒤흔든 사건을 듣습니다. 비록 소문이라도 귀담아듣고 구원 받고 싶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 앞에서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신앙고백까지 합니다. 듣고(聽), 고백하며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 이것이 디아코노스의 자세입니다.
후대는 라합을 ‘믿음’(히11:31)과 ‘행함’(야2:25)으로 의로움을 얻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신약성서 안에 믿음과 행함, 두 가지로 좋은 해석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과 라합뿐입니다. 라합은 비록 천대받고 우상 속에 살던 여인이었지만, 사람들이 하찮게 여긴 소문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듣고(聽)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라합의 이름이 예수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므로 영광 속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