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 되면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먼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모세오경에 보면 유대인들은 1년에 3차례의 큰 절기 중 하나로 지켜오고 있다.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면서 여드레 동안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며 정말 큰 행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왔다.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면서 여드레 동안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초청해 이날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배부르게 해주었다. 가난한 그들은 매년 그날을 기다리며 살았다. 물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다.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오면서 주후 1621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탄압과 핍박에 시달려 견디다 못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망망대해를 건넌 것이 신대륙에 이르렀다. 메이플라워호라는 풍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면서 배안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기도 하고 심한 고통과 고생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척박한 땅을 개간해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 원주민들을 초청했다. 서로 긴장과 반목으로 경계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마음열고 서로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며 축하 한마당을 열어 마음껏 양고기, 칠면조, 포도주, 각종 과일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연례적 행사가 되어 해마다 이어지면서 서로 하나가 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형성되고 그 나라의 국경일로 선포되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이날 기부 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 후 1893년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교회에도 추수감사절을 가르쳐주어 오늘날까지 추수감사절을 지켜오고 있다.
우리나라 방식의 추수감사절은 추석으로 송편과 과일, 고기, 나물 등으로 대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강강술래나 풍악놀이 등을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이보다 더 신앙적인 추수감사절을 가르쳐주어 우리 한국교회도 매년 가을이 되면 각 교회마다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지키는 주일이 다르긴 하지만 보편적으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오고 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교회 강단은 새 쌀과 고추, 과일 등 온갖 곡식으로 장식했다. 몇날 며칠씩 축하 파티가 열렸다. 교회에서는 드려진 새 쌀로 떡을 하고 밥을 지어 믿지 않는 동네 어르신들도 교회로 초청하고 심지어 돼지까지 잡아 동네 잔치가 열리곤 했다. 지금도 그때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점점 인색해져가고 있다. 헌금 몇 푼 드리면 그것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으로 착각한다. 어려운 이웃, 헐벗고 가난한 이웃,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아니라 교회재정 적자 메꾸는 일이라든지, 해외 단기선교, 선교지 탐방이니, 가을철 단풍구경 등을 하고 교회 내에서 즐기는 일에 소중한 예물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살길은 한가지 뿐이다. 그것은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추수감사절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특별히 올해는 예년보다 덮고 고온으로 농부들이 땀을 많이 흘렸지만 농촌의 들녘은 황금물결을 이루었고, 벌써 가을 추수가 끝나 농촌교회에서는 새 쌀이 나오고 햇과일들로 교회가 풍성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필자는 1년 전 어느 교회 추수감사절을 접했는데 너무나 이색적이었다. 강단에 직접 농사한 쌀가마니와 김장배추, 온갖 농산물 등을 갖다놓고 예배드리고 일주일 후에 어려운 이웃과 미자립 목회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풍성한 추수감사절을 만들기 위해 복음가수나 국악팀을 초청해 이웃 주민 초청 잔치를 연다면 얼마나 더 멋있을까 상상만 해도 어깨 춤이 나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된다. 주님께서 초대교회의 일곱교회를 보내주신 것처럼 오늘날 내가 섬기는 교회가 칭찬만 받는 교회일지, 아님 책망만 받을 교회가 될지를 돌아보며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는 추수감사절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준영 목사
<목포대중교회, 총회 부흥전도단 전 대표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