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눈으로 보는 설교

Google+ LinkedIn Katalk +

가을이 되면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이 된다. 검색하던 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에 살을 찌우는 사색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책을 열고 독서에 정진하기가 어렵다. 순간이나 찰나를 살아야 되고 속도(speed)가 중요해지다 보니 굳이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이 빠르기에 더 이상 독서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있다. 설교가 중요한데 진짜 좋은 설교는 듣고 보기가 쉽지 않다. 홍수가 나면 물은 많지만, 막상 마실 물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칼럼을 통해서라도 마음에 남는 설교나 은혜 되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름철 급하게 소나기가 지나고 나면 도랑물은 내려가는데 삽으로 땅을 파보면 물이 스며들지 않은 채이다. 설교를 건성 듣거나 들어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이 소나기같이, 순간 공기를 진동시키고 끝나는 바람같이 되고 마니 허망하기 짝이 없다. 비교적 내가 기쁜 마음으로 읽는 조정민 목사의 <인생은 선물이다>라는 잠언록을 바쁜 생활 속에 한두 구절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다. ①미숙한 사람은 대접받기를 즐겨한다. 보통 사람들은 적어도 대접받은 만큼은 남을 대접한다. 성숙한 사람은 비록 자신이 대접받지 못해도 남 대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②다른 사람의 허물을 빈틈없이 지적한다고 해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숙은 오히려 그 사람의 허물을 얼마나 가려줄 수 있는가에 달렸다. ③사람을 믿다가 배신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사람을 사랑하다가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배신과 그 상처 없이 성숙한 사람은 없다. ④다 나이를 먹지만,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든 어른아이(Adult-child)는 고집, 편집, 아집에 붙들려 불안, 불평, 불만 속에 살고 있다. 어른아이의 중심에는 늘 “나 하나”만 찾게 되니 고독하게 살게 된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그 누구도 낄 곳이 없는 것이다. ⑤남을 험담한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칭찬한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험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남을 험담할수록 내가 더 비굴해지고 남을 칭찬할수록 나는 더 당당해진다.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보다 못났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깎아내린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⑥내 경험, 내 상식, 내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 용납, 그 수용, 그 포용이 내게 성숙을 안겨준다. ⑦미숙할수록 나를 더 생각하게 되고, 성숙할수록 나를 덜 생각하게 된다. 미숙은 나를 크게 여기고 많이 생각하지만, 성숙할수록 나를 작게 여기고 적게 생각한다. 그래서 미숙은 불안하고 성숙은 평온하다. ⑧무한 성장은 없다. 끝없이 자라나는 암세포도 그 주인이 생명을 다하면 성장이 끝난다. 스스로 성장을 멈춘 곳에서부터 성숙이 시작된다. ⑨서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가? 다양성에 대해 짜증이 나면 미숙한 것이고, 다양성에 대해 평안하면 성숙한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바로 기쁨의 원천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나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⑩잘난 사람을 만날 때 불편을 느끼면 내가 더 성장하라는 사인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을 만날 때 불편을 느끼면 내가 더 성숙하라는 사인이다. ⑪미숙은 자아의식을 끝없이 확장하고 성숙은 공동체 의식을 끝없이 확장한다. 미숙은 내가 잘 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이고, 성숙은 공동체가 잘 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이다. ⑫겸손한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성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통해 성숙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우쭐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분노한다. 성장은 양적 개념이고 성숙은 질적 개념이다. 사람은 성장과 성숙이 병행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