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 부활 신앙의 기원과 부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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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의 기원과 내용 <2>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한계도 모르며, 죽음의 한계도 모른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고 낫게도 한다. 하나님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다.(신 32:39) 하나님은 스올에 내려가게도 하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한다.(삼상 2:6)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듯이, 죽은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고,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하나님 앞에 절할 것이다.(시 22:29)

그렇지만 죽음 속에도 하나님과 계속 교제할 수 있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초기 문서에는 아직까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구절은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야훼 신앙에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세계에 죽은 자들의 부활을 기대하는 믿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르시아 종교와 가나안의 풍산신앙은 그들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사야는 이를 증언한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호 6:1-3 참조) 여기서 하나님의 부활 능력은 땅을 적시는 봄비와 비교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신앙이 해마다 자연이 소생하는 경험과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에는 이미 부활의 표상이 존재해 있었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배격되고 가증한 것으로 비판받았지만, 죽은 자를 예배하고 부르는 의식도 백성 가운데서 유행하고 있었다.(레 19:31, 20:6, 27, 신 18:10f. 삼상 28:3 이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죽은 자의 부활을 거부한 것은 두 가지 근거에서 비롯한다. 먼저 이스라엘에서 야훼 하나님은 생명과 역사의 하나님으로 예배되었으며, 죽은 자들과 스올의 하나님으로는 경배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사자(死者) 숭배와 조상 숭배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관습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쫓아내어야 했던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 흔하게 행해졌고, 하나님의 백성이 거부해야 할 일들이 목록 속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야훼 신앙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불멸 표상과 부활 표상을 배격해야 했다. 죽음 극복에 대한 이방인의 열망에 맞서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행동하는,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수했다. 비록 후기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부활 희망이 일어났지만, 이것은 결코 불멸 열망의 투사(投射)로 해석되지 않았다. 불멸의 열망이 야훼 신앙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이스라엘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멸 표상에 관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부활에 관해 분명하게 말하는 유일한 본문은 다니엘서다. 종말론적 환상 속에 다니엘은 선택된 백성의 부활을 희망한다. 여기서 백성 가운데서 오직 선한 사람들 혹은 순교자들만이 부활하는지, 아니면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부활한 사람들은 ‘먼지의 땅’(무덤)에서 나온다. 인간과 죽음에 대한 성서의 이해에 따라 부활은 몸과 영혼의 재결합으로 표상되지 않고, 전인의 소생으로 표상된다. 왜냐하면 죽음과 함께 인간의 전인적 특성(몸과 마음의 통일성)이 깨뜨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은 지하 세계에서도 약화된 상태의 육체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생명의 소생과 함께 다시금 온전한 육체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된다. 

‘마른 뼈들의 소생’에 관해 말하는 에스겔도 부활 신앙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이 본문은 명백하게 은유적이다. 이 본문의 원래의 목적은 새로운 창조라는 강력한 계약 갱신의 행위를 통해 부정한 이스라엘이 깨끗하게 되고 포로가 된 이스라엘이 자신의 땅으로 회복되며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게 될 방식에 대한 대단히 강력하고 생생한 은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부활에 관한 예언으로 읽었으며, 백성의 소생에 관한 환상은 죽음의 극복에 관한 분명한 표상이 이미 존재해 있었음을 전제한다. 

이사야와 호세아도 죽은 자들의 소생에 관해 말한다. 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생명을 주고 회복시키는 야훼의 권능에 대한 믿음의 기도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도 후대의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 본문을 종말론적인 부활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이런 의미로 읽게 되면, 이 본문은 야훼가 그의 백성에게 죽음의 반대인 새로운 몸을 입는 삶을 줄 것이라는 가장 초기의 명시적인 진술이 된다.

이신건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전)

•생명신학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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