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야당의 김대중, 김영삼 의원 등의 반대로 여당이던 공화당은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야당 의원들의 농성으로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김종필 의원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청와대를 방문하여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하였다. “야당의 반대가 심해서 이번 회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음 회기에 꼭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진노(震怒)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고속도로를 짓겠다는데 뭐 야당의 반대로 통과를 못 시켜?” 박 대통령의 고성(高聲)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그때 이만섭(李萬燮) 의원이 말했다. “각하, 고마 한번만 봐 주이소!” 느닷없는 경상도 사투리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누그러졌고 경북 구미(龜尾)가 고향인 박 대통령도 고향 사투리 한 마디에 웃음을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다. “알겠소. 앞으로는 빈틈없이 잘 하도록 하시오.”
모든 사람에게는 고향이 있다. 어느 심리학자는 ‘고향’을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고 했다. “물고기도 저 놀던 물이 더 좋다”는 속담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바꾸어 놓은 말이라 하겠다. “정들면 타향도 고향”이라는 노랫가락이 있지만 ‘타향’이 아무려면 내가 태어난 곳,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는 곳,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들이 있는 그곳만이야 하겠는가?.
지금은 객지에서 힘들게 살고 있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세상 물정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면서 자라난 고향이 그립고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세상이 많이 변하여 고향의 오솔길이 포장도로로 바뀌고, 동무들과 어울려 오르던 뒷동산에 거대한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어도, 또 동무들과 물장구치던 냇가가 세월 따라 복개천(覆蓋川)으로 변해도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며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뛰어난 시어(詩語)와 감상적(感傷的)인 작품으로 이름난 여류시인 노천명(盧天命, 1912~ 1957)은 인간과 고향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언제든지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에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얗게 피는 곳/” ㅡ이렇듯 시인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처럼 고향은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포용(包容)하는 곳이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곳이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유언’에서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공통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죽을 때에 아들들에게 자신의 시신(屍身)을 고향산천에 묻어줄 것을 부탁한다. 고향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들은 전쟁 중에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민(失鄕民)들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운지 잘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고향을 지척(咫尺)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이 뼈저린 그리움으로 다가오리라. 그래서 대부분의 실향민들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라는 한탄스러운 노래를 즐겨 부른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고향에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며 자신의 마음이 담긴 추억들과 별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었던 꿈들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믿는 신앙인들은 영원한 「영혼의 고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목원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나 최근까지 40년간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던 띠 동갑 후학(後學) 한 사람을 달포 전에 멀리 떠나보냈다. 친구가 젊은 시절, 한 동안 우리 「대전성지교회」에도 출석하였으나 충남 논산지방으로 이사하면서 결과적으로 70여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떠나간 것이 가슴 아프다. 그를 끝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지 못한 것을 자책(自責)하게 된다. 장례식장으로 찾아가 그를 문상(問喪)하면서 《훗날 내가 돌아가야할 영원한 본향 집》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이 하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마련되어 있다(고후5:1)”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올 자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영원한 고향집을 바라보면서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도록 힘써야 할 ‘까닭’을 새삼 절감(切感)하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