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적 부활 : 현재적 종말론<2>
칼 바르트는 불트만의 실존론적 복음 해석을 반대하고, 철저히 성서적이고 종교개혁적 입장에서 새로운 정통주의 신학의 길을 선도했던 신학자였지만, 1924년에 출간한 『죽은 자들의 부활』(Die Auferstehung der Toten)에서는 변증법적, 초월적 종말론의 지대한 영향 아래 역사의 종말과 부활을 철저히 현재적, 순간적 사건으로 이해했다. 역사의 종말은 모든 시간과 그 시간에서 일어나는 것의 근거인 원역사(Urgeschichte)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시간의 한계는 모든 시간의 한계이고, 바로 그래서 시간의 기원이다. 참된 종말에 관해서는 매 시간마다 말할 수 있다. 종말은 가까이 있다! 아무리 초자연적인 종류의 거대하고 의미심장한 재앙의 시간이라도, 그것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오직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종말은 가까이 있다! 그것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관해서도 원칙적으로 해당한다.”
하지만 후기에 이르러 바르트는 자신의 종말론을 완전히 수정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고도 의식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명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세워진 지배, 그분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에서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와 온 인류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로써 바르트는 세계사적, 목적론적인 종말론을 다시금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든 시간의 신비, 영원이라고 주장하던 변증법적인 신학 시절과는 달리 이제 바르트는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적 종말론을 강조하게 되었다.
틸리히(P. Tillich)에게도 현재적 종말론이 압도적으로 전면에 나온다. 틸리히도 초기의 바르트처럼 종말론을 영원과 시간의 변증법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우리의 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우리가 현존하고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시간을 끝없는 흐름으로 생각한다면, 현재는 없다. 현재의 수수께끼는 시간의 모든 수수께끼 중에서 가장 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간을 포함해서 그것을 초월하는 것, 곧 영원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답이 없다. 우리는 현재에 산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위해 언제나 새로운 현재로 갱신된다. 이것은 시간의 모든 순간이 영원한 것에 도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를 위해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 영원한 것이다. 이 현재는 우리를 위해 일시적인 지금을 마련하는 영원한 지금이다. 모든 시간의 소모된 힘을 뛰어넘는 오직 하나의 힘은 영원이다. 예수는 전에 있었고, 현재도 있으며, 앞으로 올 분, 처음이며 나중이다. 그는 그의 영원한 현재에서 우리로 하여금 쉬게 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 속에서 만난다. 과거와 미래는 영원한 ‘현재’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의해 삼켜지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는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종말은 자신의 미래적 차원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적인 경험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지금’ 영원의 얼굴 안에 있다.
한국에서 ‘현재적 부활’을 주장하는 신학자는 전무한 편이다. 그러나 김재진은 최근에 펴낸 자신의 저서 『예수의 부활, 교회의 반석』에서 ‘현재적 구원과 부활’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은 연대기적으로 먼 훗날 역사의 끝에, 혹은 우주적 파국이 있은 다음에 그 어느 때 일어날 확정된 사건이 아니다. 이러한 사고는 다분히 이신론적(deistic) 사고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1절에서 아주 분명하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나 여기서 ‘살리시리라’는 ‘아주 먼 훗날, 역사의 마지막에 살리겠다’라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하나님의 영, 부활의 영]이, “[이미] 너희[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롬 8:11a)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곧 ‘다른 보혜사, 성령’이 이미 ‘오시어’, ‘오늘’ 와 있어서’[재림하여], 그리고 ‘이 때’[지금] 순식간에 일하고 계신다.
이신건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전)
•생명신학연구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