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에셀나무이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60%가 네게브라고 불리는 황량한 광야로 덮여 있다. 광야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인생을 광야에 비유하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쉼과 안식을 의미할 때 반드시 에셀나무를 등장시킨다. 반면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극한 고난의 상황에서 여지없이 등장하는 나무가 로뎀나무이다. 로뎀나무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로뎀나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상황을 상징하는 나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좋아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나무는 ‘에셀나무(אשל)’’이다. 시 1:1절에 ‘복 있는 사람은(아쉬레 하이쉬 아쉐르, אשרי האיש אשר)’ 문자적으로 ‘행복하도다 ~하는 사람은’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분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다. ‘에셀나무’가 시편 1편에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행복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우물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평화를 기뻐하며 이스라엘 남단 중앙에 있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었다. 성경은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21:33)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아브라함은 이곳에 에셀나무를 심고 그 밑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까? 이 에셀나무는 ‘작은 숲’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나무는 주로 시내 광야에서 서식하는 상록수로서, 생명력이 왕성해 사막의 모래 언덕이나 염분이 많은 늪지대에서도 잘 자란다. 이 에셀나무는 재질이 단단하며 키가 커서 넓은 그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작은 숲’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 가나안은 온갖 잡신과 우상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브라함은 우상이 난무하던 그 시대에 뜨거운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과 쉼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이 경험하고 만났던 하나님을 증거했다. 아브라함은 지치고 힘든 광야의 백성들이 에셀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태가 끊어졌던 사라가 어떻게 아들을 얻을 수 있었는지 산 간증을 들려주며,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꿈꿨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땅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쉼과 안식을 줄 수 있는 에셀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다. 에셀나무는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에셀나무는 잎이 매우 짜서 이슬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이 나무 밑에는 밖의 온도보다 10도 차이가 난다.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땅을 확보하고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룬 곳이기에 ‘브엘세바’가 아닐까? 바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가족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면서 ‘함께 웃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21:6) 멋지지 않은가? 아브라함은 광야의 한복판에 에셀나무를 심고, 그 나무 밑에서 백성들과 함께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는 거룩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서 지친 백성들과 후손들에게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신앙교육의 현장이며 에셀나무가 되기를 꿈꿔본다.
황순환 목사
<서원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