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믿음] 애국하는 마음으로 구순의 삶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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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느냐 학생 참 잘생겼 다”라고 말하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 용인 간다고 하니까, 용인까지 타고 가자고 했다. 겁도 났지만, 전쟁 중에 상사 국군이 어찌하겠나 싶어 탔다. 그런데 용인을 지나서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옆에 뾰족한 산밑에서 부대가 멈추더니, 야간 전투 진격상태라며 머물렀다.

그래서 나는 도리 없이 상사군인의 행동만 보면서 있는데 흑인 군인이 가가호호 다니면서 수색하는 것을 보고 의아심을 갖게 되었다. 야간에 산꼭대기 정상에서 진격 전투가 시작되었다. 조명탄을 발사해 대낮같이 밝게 하고 총전투 진격을 하는데 인민군과 공산군이 후퇴하면서 유엔군이 완전하게 진격하는 실전 상황을 나는 모두 목격했고 전투현장에서 상사를 도와주며 낱낱이 보게 되었다.

중공군이 후퇴하면서 남기고 간 전투 식량과 총기류 등 압수품을 추적해 후송차에 싣고 가는 길에, 나를 태워 용인까지 데려다 주라고 해서 화물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과 동생들도 무사히 집에 와 있었다. 할아버지도 계시고 우리 가족을 모두 만나니 안심이 됐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상황을 말씀드렸더니 가족들은 군에 잡혀가서 전투에서 죽은 줄로만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멋있었던 모든 것을 상세히 말씀드리며 가족들과 6·25전쟁을 이렇게 체험하면서 보냈다.

이와 같은 전투 경험으로 삶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첫째는 바르게 사는 것이고, 둘째로는 감사하며 나라를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내 삶의 철학이다.

중고등학교 졸업 후  군입대

6·25전쟁의 이유로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전쟁 후 교육방침이 중학교 6년제에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변경되었고, 고향 용인에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졸업 후 군대에 입대해 논산 제23연대에서 모든 군사훈련을 마치고 대구경리과 학교로 배치되어 소정의 경리학과를 마치고 육군본부 경리감실 급여과로 배속되며 중대본부 서무업무를 담당했다. 야간에는 건국대학교 법과에 입학, 학업을 마치고 경리감실 중앙경리단에서 군 생활 만기 제대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농경 생활을 했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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