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집안이 어려워지면 며느리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김장을 담거나 이불빨래를 하고 나면 안주인은 그냥 기쁘고 품꾼이나 파출부는 품삯과 보너스를 받아야 기쁘다. 주인이냐 아니냐, 일꾼이냐 삯꾼이냐의 차이다. 옛날 먹을 식구는 많고 양식은 모자랄 때 어머니는 배곯아 죽고 자식은 배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아랫목에서 자는 사람은 더워서 죽고 윗목에서 자는 사람은 얼어서 죽는다는 말도 있다. 분배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이런 양극화가 발생한다. 연금수혜자나 정액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막막함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월급을 받는 입장에선 월급날이 더디 오지만, 월급을 지급해야 할 주인에겐 월급 줄 날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 이런 사연을 보자. “2006년쯤 전북 김제의 한 농공단지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40대 중반의 여성 한 명이 이 사고로 숨졌다. 하루 종일 이어진 고된 노동을 마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정읍의 집으로 향하다 그만 뒤따라오던 차량에 치이고 만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들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이 사고는 특별한 일이 됐다. 그 여성은 한 농촌교회 목회자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신분의 남편, 대학 졸업반으로 취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딸, 농촌교회의 교세와 재정 악화, 주변의 모든 환경이 그를 일터로 내몰았고 가슴 아픈 결말이 뒤이어진 것이다. 유족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교회들과 지인들까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또 2021년 가을 이번에는 경남 진주의 한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일용직 근로자 한 사람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의 신분은 목사로 드러났다. 교회 개척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사역을 계속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3명의 부양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이 목회자는 과연 어디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을까”(기독신문/2021.10.19). “한국만큼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교회가 미국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종교 개혁자들처럼 성경을 정확히 해석하고 순종하는지는 의문이다. 곳곳에서 자의적인 성경해석이 자행되고 정통 신학에 대한 관심과 존중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성경의 기복적 가르침을 확대해석해 ‘번영신학’이 유행하게 만든 것은 한국교회 타락의 한 뿌리가 되었다. 대교회 주의, 성장 제일주의, 목회세습 등의 폐습은 종교개혁 정신과 성경의 참된 가르침에서 상당히 빗나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섬김과 구제는 소홀히 하면서 화려한 예배당 건축 등에 막대한 헌금을 쓰는 것도 종교개혁 정신에는 맞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처도 성경적 가르침과 종교개혁의 모범에 충실하지 못했다. 한국교회의 관심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 살리기가 아니라, 교회 운영과 대면 예배에 집중해왔다. 즉 교회 자체의 유지 보전과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손봉호/종교개혁 다시 생각한다/부분발췌).
이제 2024년을 결산하면서 목회자와 당회원(장로)들은 냉정하게 우리 교회를 점검해 보자. 1년간 교회 재정의 수입 부분이 어떻게 되었나 결산해 보자. 예산 대비 70% 수입이 되었다면, 예정된 각 부서의 사업에도 평균 30%의 축소 조정이 생겼을 것이다. 선교사업을 줄였거나 교육 예산이 축소됐거나 지역 사회봉사에 조정이 생겼을 것이다. 이때 교역자 사례비와 각종 수당 및 복지 등 교역자 관련 예산도 80% 혹은 그 이하로 줄었나 확인해 보자. 그랬다면 다행이다. 목회자가 스스로 고통 분담에 나선 것이니까. 혹시나 다른 부서의 예산이 다 축소 집행됐는데, 목회자 관련 예산만 100% 집행됐다면 그 목회자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역자가 아니다. 교회야 어찌 되든지 내 몫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최소한도 예산에 미달되는 상황에서는 목회자 스스로 보너스를 반납하거나 도서비 등 복지비를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야 교회와 교인들을 사랑하는 목회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