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
“당신의 적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로마 제16대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어록이다.
그는 철학자 황제로서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성현군자였다. 그가 내우외환의 역경을 넘어 무난한 치세(治世)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토아 철학의 신봉주의자로서 이성적 사고, 성실한 책무수행, 윤리 도덕적 품행(品行) 등을 실천 덕목으로 삼았던 때문이다.
적에게 복수하는 비결은 그들처럼 되지 않는 인간이 될 때만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신조(信條)이다. 평범한 은유 같지만, 지덕을 겸비한 통치자의 철학이다.
“존재하는 것과 생성되는 것이 얼마나 빨리 스쳐 지나가다가 사라져 버리는가를 가끔 생각해 보라.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고, 여러 가지 원인은 무한한 변화를 일으키므로 정지하는 것은 거의 없다. 우리 곁에는 과거의 무한과 미래의 심연(深淵)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이런 것들 속에서 의기양양해한다든지 비참해한다든지 또는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는 자처럼 불평을 터뜨린다든지 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
위의 대목은 인간 존재에 관한 통찰이다. 스스로의 장단점을 분별해 장점을 살려가는 긍정적인 심성을 타고났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점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는 선(善)의 샘이 있다. 이 샘은 당신이 파 들어가기만 하면 언제나 솟아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의 샘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 것이라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맞물리는 발상이 아닌가. 긍정적 가치관과 도덕율에 바탕을 두고 차별없는 치세를 한다면 소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가? 그러나 변화없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우주의 자연에 이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밀한 것이 있을까? 장작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운 목욕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일 음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겠는가? 그 밖에도 변화가 없이 긴요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 있는가? 당신 자신이 변하는 것도 동일한 경우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연에 있어서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가?”(M.아우렐리우스의<명상록(범우 문고판)>에서)
스토아 철학의 후기 계승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우렐리우스의 우주관이 담긴 대목이다. 자연의 변화를 우주 속의 자연 발생론으로 보고 인간도 하나의 소우주라는 지론을 펴고 있다. 즉 이성을 가지는 이상 모든 사람은 신의 아들로서 한 동포라는 것이다.
<우주는 그 전체로 유기체를 이루고 필연적, 결정적으로 지배된다. 인간은 소우주이고 그 본질인 로고스는 우주의 본질인 로고스와 동일한 것이므로 이성에 따르는 생활은 우주에 따르는 생활이고 곧 자연에 따르는 생활이된 것이라고 말한다.>(철학사전의 글을 윤문(潤文)한 것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재임 시절 자신의 철학적 사색을 적어 놓은 것을 후대에 <명상록>이란 이름으로 묶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