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후변화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변화를 가져온다. 지난 여름의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추석 때 채소류 가격급등으로 서민들에게 어려움을 주더니 올해 김장철에도 여전히 배추, 무 등 산지 작황이 좋지 않아 4인 가족 김장 비용 33만1천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소식이다.
농사짓는 사람 치고 풍년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들판 가득히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고 주름살 가득한 농부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풍년이 들었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풍년이 들었을 때 농사짓는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공급이 비탄력적인 것은 공산품보다 대개 생산기간이 길고 보관이 어려우며 사람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기후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상악화로 공급이 줄어들었다고 하면, 농산물 수요는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탄력적인 경우에 비해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크게 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기상상태가 좋아서 풍년이 되었을 경우, 농산물 공급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는 수요가 비탄력적인 농산물의 가격은 폭락한다. 이처럼 풍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이 급락해 농가의 수입이 감소하고, 흉년이 들면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해 농가의 수입이 증가하는 이른바 ‘농부의 역설(farmer’s paradox)’, 또는 ‘풍년의 역설’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농산물에 대한 수요량이 거의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공급량이 약간만 커져도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결과가 나타난다. 반면 공급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풍년이 들면 농민의 살림이 더욱 쪼들리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농민은 올해 벼농사 풍작으로 쌀값 하락이 예상되어 시름, 배추 흉년이 들어도 시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민의 입장에서 볼 때, 풍년이 들었을 때 값을 안정시키는 데는 별 성의를 보이지 않다가 흉년이 들어 값이 오를 기색이 보이면 잽싸게 손을 쓰는 정부가 얄밉기 짝이 없을 것이다. 농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정책상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물가에 악영향 미치는 이상기후에 대비해 정부는 기후변화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지난 해 金사과에 이어 이번엔 金배추 파동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대파대란’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산물 대책이 시급하다. 급기야 ‘기후 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기후위기가 곧 경제위기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전근대적인 농산물 유통체계에 대한 수술도 절실하다. 농산물 납품업체와 도매상 등 중간상인이 이득을 보고,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는 피해를 보는 유통구조를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
농업은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2022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32%, 곡물만을 따지는 곡물자급률은 23%에 불과한 수준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쿠즈네츠(S. Kuznets)는 “농업을 소홀히 하더라도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는 갈 수 있지만 선진국까지는 진입할 수 없다”고 했다. 한 해의 영농을 결산하는 수확의 계절이다. 추수감사의 계절, 우리의 안전한 식탁을 지키고 국토라는 거대한 정원을 가꾸는 농민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의 마음들을 전하자.
조상인 장로 (안동지내교회)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