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바로 경조사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뻐하고 축하할 일에 함께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되고 가슴 아픈 일, 견디기 힘든 슬픈 일에 함께하면 그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그래서 주위의 경조사에는 늘 참석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같은 교회 성도의 경조사에는 당연히 참석해야 하지만 시찰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찰회 30여 교회의 목사, 장로 회원의 경조사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노회 회원의 경조사에도 아는 분이면 함께 하려고 한다.
교회의 근간은 성도가 모여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닌가? 교회 공동체뿐만이 아니다. 직장과 생업의 현장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맺어진 많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조사에 참여해 제일 기쁘고 슬픈 일에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섬김과 위로가 어디 있을까 한다. 그런데 경조사에 관해 생각하다가 문득 교회의 임직식과 은퇴식에 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1년 뒤의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일까? 교회마다 은퇴자를 위한 배려에 차이가 있음을 본다. 어떤 교회는 은퇴자를 위해 임직식과 따로 은퇴식을 하는 교회가 있다. 물어보면 은퇴자를 예우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그리고 성도를 위해 많은 세월 헌신하며 수고를 다한 그 섬김은 아무리 예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애쓰고 노심초사 염려하며 땀 흘리며 봉사한 많은 세월을 무엇으로도 갚아줄 수 없다. 물론 상급은 하나님께 받아야 하는 것이고 우리의 상급은 하늘에 쌓아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교회의 행사 중 임직식과 은퇴식을 함께하는 것을 시간과 재정을 줄이고 또한 성도와 축하객들을 위한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은퇴식을 예배 중에 잠깐의 순서를 넣어서 진행하는 것은 재고해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은퇴자의 귀한 수고에 아무래도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교회와 성도를 위해 주님을 위해 열심을 다한 수고에는 응당 충분한 감사와 격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은퇴자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교훈이 되고 귀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12월 쌀쌀한 날씨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경제는 어렵고 위축되어 있다. 또한 사회는 갈등하고 분쟁하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경조사 중 조사를 날마다 겪으며 사는 것 같다.
이때 우리는 함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주위에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님 없이 낙심하며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가 함께하고 위로하고 힘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대림절 주님의 마음으로 성탄 엽서를 보내야겠다.
엄기원 장로
<평북노회 장로회장, 마장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