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가 가까이 오고 있는데, 성탄절을 기다리며 지나온 날들 속에서 성탄절에 대한 추억을 되돌아볼 때 잊어버리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되는 성탄절 추억이 있다. 첫째는 ‘성탄절 새벽송’이고, 둘째는 ‘성탄카드 보내기’, 셋째는 ‘성탄선물 나누기’ 이다. 거의 50년 60년 전의 추억들이다. 성탄절 전날은 으레 교회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성탄절 성극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마리아, 요셉, 그리고 인형 아기 예수, 동방박사 세 사람. 지금 기억으로는 거의 한 달은 족히 연습 했었다. 자연적으로 대림절 절기를 의미 있게 보낸 것이다. 연극이 끝나면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찬송대회가 있었다. 그래서 푸짐한 상품도 받곤 했다. 무대에 올라가 찬송을 부르며 진땀을 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육관에 피워놓은 따뜻한 장작 난롯불 주위에 모여 선물 교환이 시작된다. 서로 선물을 준비해 내놓고 그 속에는 선물을 받아가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게임 벌칙이 있었다. 그리고 선물은 그 자리에서 다 공개되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도 있는가 하면 장난기로 가득한 선물도 있어서 모두들 배꼽 잡고 웃던 생각이 난다. 게임 벌칙도 아주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벌칙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탄절 전날 밤을 지내곤 했다.
겨울밤이 깊어 갈 무렵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찬양대를 만들어 구역별로 성탄절 새벽송을 떠나기 전, 찬양 연습을 한 후 각 찬양대 별로 출발을 한다. 청년들이 며 칠 동안 만든 나무 십자가 통 안에 촛불을 밝히고 앞장서는 사람, 찬양대원들이 방문한 가정에서 주는 선물을 담기 위한 자루를 든 사람, 모두가 기대에 벅찬 마음으로 인도자를 따라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한다. 지금 같았으면 자동차로 출발을 하겠지만 당시는 모두 걸어서 성도들의 집을 방문해야 했다.
어느 해는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다니기도 했다. 추위에 언 입술과 얼굴이지만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을 화음을 맞춰가며 아름답게 불렀다. 찬양대원들이 오기를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어 찬양대원들이 대문에서 찬양 부르는 소리에 놀라 뛰어 나오는 성도들도 있다. 가지각색이다.
장로님 댁을 방문할 때는 은근히 기대를 한다. 분명 장로님께서 그냥 보내지 않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대접할 것이라는 기대다. 기대를 했는데 그냥 보내면 참 섭섭하고 다음 집 갈 때까지 투덜대며 수근거린다. 대부분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따뜻한 단팥죽 한 그릇 대접해 주시면 얼마나 감사한지 그 고마운 이야기가 1년은 간다.
요즘의 성탄절은 너무 밋밋하다. 성탄카드를 주고받는 것도 없고 선물교환도 없다. 어린이들의 연극이나 찬양대회도 없고, 새벽송도 없다. 앞으로 50년 60년이 지나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성탄절의 추억이 있을지 걱정이다. 그나마 70이 가까이 오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50년 60년 전의 성탄절을 추억하며 성탄절의 기분을 내보려고 노력하지만 기분이 안 난다. 금년에도 역시 추억속의 성탄절을 생각하며 서글픈 성탄절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성탄절 전날 밤을 새운 우리는 성탄절 예배 시간에는 졸기만 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민량 목사
<대전성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