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는 산타가 기다려지는 성탄이기도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루의 축제가 아닌 영원한 구원의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카톡이 발달하면서 예전에 성탄카드나 연하엽서로 축복인사를 나누던 풍습이 사라졌다. 눈 덮인 마을, 눈길을 달리던 썰매, 사슴과 다람쥐들이 그려졌던 카드가 그리워진다. 카드 안쪽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하나님의 사랑, 선행과 행복과 따뜻한 정을 담은 글, 축복하는 기도가 쓰여져 있었다. 거리마다 교회마다 기쁜 성탄을 축하하는 트리가 휘황찬란하게 밤길을 빛낼 것이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캐럴송이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성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음’이 최대의 신비이다. 사람들은 늘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 생각하지만 전설이 아닌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음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아래서 백부장이 고백한 대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의인’이신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이다.
성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영광이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나치게 자기 영광, 자기 자리에 집착하는 탐심으로 우상숭배자가 된 크리스천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매우 서글프다. ‘지극히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이어야 하는데 지극히 낮은 인간, 죄인인 인간들이 너무 자기 영광에 집착되어 있기에 성탄의 환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탄은 기뻐하심을 입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기쁨을 생성해 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들은 대개 몸의 기쁨, 즉 육신의 기쁨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기뻐할 수 있도록 기뻐함을 입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기에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기쁨을 입은 축복된 사람들이다. 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으로의 확신이 있어야 성탄이 환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입은 ‘기뻐하심’이 충만해야 한다.
성탄은 ‘평화’이다. 평화! 얼마나 오랫동안 얘기되고, 원하고, 주장하는 주제인가? 그러나 평화는커녕 전쟁, 테러, 압박, 분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근래에는 짧게 끝난 비상계엄으로 인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국을 또 맞게 되었다. 정말 인간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세상이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해를 보내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무거운 맘들을 열고 새해를 기약하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자리잡지 못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기뻐하심을 입지 못하면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가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서로가 위에 서려하고, 패권을 쥐게 하고,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면서 평화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지금 한국교회 역시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로서의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성탄은 정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통회하며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