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에서 배우고 성경을 읽어 기억하고 교우들과 대화에서 여러가지 사물과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 교회 밖 사회생활에서 배우는 것 또한 많고 그 이전 학창생활에서 배워 알게 된 것으로 우리 인격의 기초를 닦았다. 그보다 더 먼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평생을 배워도 우리에겐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알면 알수록 자기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가르쳤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우리는 한편으로 자기의 지식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를 갖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에게서 무식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서 긴장한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인격이지만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며칠 전 겪은 일을 한가지 고백한다.
금년엔 사람들이 유난히 단풍에 대한 불평을 많이 했는데 그런 단풍이라도 한번 더 보려고 동구릉을 찾았다. 지난 8월엔가 지하철 8호선을 춘천가는 경춘선에 연결하는 연장노선이 완공되어 그중에 동구릉 역이 들어가 교통 또한 편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 27개 왕릉 가운데 아홉이 동구릉에 함께 모여 있으니 새로운 용어로 ‘국가 유산’ 대접을 마땅히 잘 해야하는 수도권의 명승지라는 생각으로 16개 봉분으로 이뤄진 아홉 왕릉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입구로 들어서서 재실을 잠깐 기웃하고 평탄한 길을 따라 나아가며 수릉과 현릉을 지나니 저 위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멀리 보이고 그 우측으로 목릉이 언덕에 가려있다. 건원릉 봉분에 접근하자 기이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모든 능의 정자각과 비각들 주위로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고 봉분의 벌초도 하나같이 잘 되어있는 중 유독 태조의 무덤만 잡초가 무성하고 몇 자나 되는 억새가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제일 높이 위치한 태조의 능이 이렇게 소홀히 관리될 수 있는가 하는 불만이 솟아오르고 나가는 길에 관리 책임자를 찾아 항의하고 즉각 시정을 요구하리라 마음먹으며 산책을 계속했다.
그러나 경내를 도는 중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화장실 외벽에 설치된 홍보영상 앞에서 문제는 간단히 해소되었다. 1408년 서거한 이성계는 생전에 왕자의 난을 일으킨 3남 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 함흥차사(咸興差使) 고사를 남기며 고향 함흥에 머무르면서 자신의 시신을 그땅에 묻으라 유언했다. 태종은 부왕을 지금 동구릉 터로 이장하면서 함흥땅의 흙과 풀을 실어와서 무덤을 덮어드렸다고 영상은 설명해주었다. 지난 600여 년 동안 능 관리자들은 충실히 건원릉을 이렇게 잡초까지 가꾸며 보살폈는데 이 무식한 방문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세상사람들 다는 아니라 해도 이 동네 사람들은 동구릉 태조 무덤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다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세상 경험을 앞세우며 교회에서는 장로라고 더 아는 척하고 누구를 가르치려 들지나 않았는지 왕릉의 출입문을 나오며 잠시 자신을 돌아본다. 화장실 앞을 지나쳐 관리실에 와서 건원릉 억새풀을 거론했더라면 물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부끄러움이 컸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농담은 귀한 교훈이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