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현대판 보쌈 (1) 

Google+ LinkedIn Katalk +

나는 얼마전 고전을 읽다가 언듯 요즘 변해가는 총각들의 결혼 의식이 떠올랐다. 비록 기혼녀라 할지라도 정신이 건전하고 생활력이 있는 자라면 이를 개의치 않고 그녀를 선택해 결혼하려고 한다. 그만큼 외적 의식세계 보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튼 건전한 정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중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자세가 현대판 보쌈이라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사상이 지배해 왔다. 인(仁)과 예(禮)를 근본이념으로 해 수신(修身)을 비롯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렀다. 이에 기반(基盤)한 기혼녀들은 재가(再嫁)를 법적으로 엄하게 금지했다.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공포한 재가금법(再嫁禁法)이 그것이다. 이 법을 철저히 지켰던 사대부(士大夫)가정은 물론 평민들까지도 재가를 금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법령을 잘 지키는 개인에게는 국가에서 열녀 칭호를 붙여 모범 된 자로 높이 평가해주기도 했으니 당시 사회상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풍조에서 청상과부일지라도 가문의 체면 때문에 평생토록 홀로 살아야만 했다. 더욱이나 약혼한 남자가 결혼 전에 죽으면 약혼녀는 그 법령에 따라 그 가문에서 홀로 살아온 열녀도 있었다. 이런 법령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이 바로 보쌈형태로 재가한 것이다.  

한밤중에 장정 여러 명이 과부의 방에 들어가 얼굴을 가린 후 이불보를 씌워 업어다가 결혼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 보쌈은 극비리에 양 본인 혹은 양가 부모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조선말 권중익의 문집 악제집(樂齊集)을 읽어보면 그 사례가 잘 드러난다. 

어느 마을에 아주 얌전한 스무 살 과부가 친정에 와 살았다. 그런데 그 건너마을 총각이 그를 은밀히 흠모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 과부의 아버지는 사랑방에 놀러 갔고, 그의 어머니 역시 건너마을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그 틈을 이용해 갑자기 몰려든 장정 다섯 명이 그를 보에 씌워 업고 달아났다. 이것을 본 동생들이 울며 사랑방까지 달려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의 아버지는 급히 달려왔으나 시간도 너무 오래되었고 밤도 깊었으니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을 보이며 실의에 잠겼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역시 안타까워할 뿐, 이 밤중에 어디에 가서 찾겠느냐며 포기한 채 돌아갈 뿐이었다. 

이 책을 쓴 저자 권 씨도 당시 어린 나이라서 어른들의 무능함을 원망했으나 훗날 장성한 뒤에 알고 보니 그 일은 극비리에 이루어진 양가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과부는 그날 밤 곱게 화장을 하고 보쌈꾼들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그날 밤 납치된 과부는 그의 남편과 함께 예쁜 아들딸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그의 부모 역시 사위와 딸, 손자와 손녀를 반갑게 맞이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인간다운 본연의 자세이며 훈훈한 이야기인가. 이성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건전한 정신이 한 가정을 이룰 때 복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가치관이요, 하나님의 원리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잘 드러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명령권자는 이 일에 책임진다. 그리고 복을 주시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조용히 이 말씀을 음미해 보자.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