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 와서 1년을 되돌아 보면 대개 감사와 반성, 회개와 아쉬움(회한) 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름하여 ‘년말정산’과 비교해 년말정신(年末精神)이라 붙여 보겠다. 잘 했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감사하고 더욱 발전시켜야겠고 잘못된 일들은 빨리 교정해서 더 이상 나쁜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가령 와다 이치로 가 쓴 ‘18년이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후회한 12가지’ 같은 것이 참고가 될 것이다. ①입사 첫날부터 사장을 목표로 전력 질주했어야 했다. ②회사의 색깔에 물들었어야 했다. ③롤모델(Role model)을 조금 더 빨리 찾았어야 했다. ④사내의 인간관계에 좀 더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⑤자만하지 않았어야 했다. ⑥부족한 상사나 싫어하는 상사에게 더 다정했어야 했다. ⑦공부를 더 많이 했어야 했다. ⑧골프를 시작하고 와인에 대한 소양을 더 쌓았어야 했다. ⑨신념을 버렸어야 했다. ⑩창의적이기보다 성실했어야 했다. ⑪주위로부터 호평을 얻기 위해 오래 일하지 않았어야 했다. ⑫동기생이 먼저 승진하는 일에 대해 웃으며 넘겼어야 했다. 직장인으로써 한 해를 보내며 이와 비슷한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다가올 새해부터 후회의 반대쪽으로 살면 된다. 그런 뜻에서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선은 당당한 회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자. 성숙한 조직원이 되자. 많은 행복을 만들고 전하는 사람이 되자.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하자. 어중간하게 살지 말자. 장래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자. 이런 정도의 다짐을 하는 것이 년말정신(年末精神)에 걸맞는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자(不結子花 休要種, 無義之朋 不可交) 같은 결심이 필요하다. 특히 도둑을 잡아야 할 고양이와 도둑이 한패가 되어 있는 상황(猫鼠同處)에선 더욱 그렇다. “태산에 부딪쳐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작은 흙더미이다.”(한비자)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동안/등 뒤의 슬픔에, 등 뒤의 사랑에/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눈 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숨 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고개 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하는 것들은/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으니//그것들이 내 등을 밀어주며/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박노해/등 뒤를 돌아보자) 부조리한 사회(정치계)에 대해서도 관용으로 품어 안자. 분노하면 3류이고, 방치하면 2류이고, 품게 되면 1류이다. 소인들은 이(利)에 의해 움직이지만 군자는 의(義)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특히 12월을 지내면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memento mori)임을 기억해야겠다. 잘 죽으려고 하면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32세에 죽자 그의 제국은 무너졌다. 성어거스틴은 죽음과 시련이 가득한 이 세상은 영생이 가능한 천국(사후세계)의 준비 과정이라고 했다. 교황 알렉산드로 6세도 죽기 전에 하나님께 간구했다. “금방 갈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실리콘 밸리의 최종 목표도 ‘죽음을 극복하는 기술의 개발’이다. 죽음을 질병의 하나로 해석하고 그 극복 방법을 찾아내려 한다. 자신의 영생을 위해 피라미드를 세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같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죽음 준비는 신앙적이지 않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관문이기 때문이다. 12월을 지내면서 나의 삶과 우리 사회의 과거-현재-미래를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검색하던 손을 멈추고 사색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 선비들의 서재는 늘 수신(修身)과 논쟁(소통)의 공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서재 이름도 운주당(運籌堂)이었다. 史記에 나오는 운주(運籌)는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고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해 전략을 세웠다. 이런 열린 마당이 있었기에 그는 23전 23승의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는 별 의미가 없다. 18세에 죽은 유관순 열사나 32세에 죽은 안중근 의사는 장수(長壽)로 평가될 사람이 아니다. 삶의 대의명분을 생각해야 한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