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흥’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만나면 교회 부흥을 이야기하는데, 그 핵심이 신앙적이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가?”, “얼마나 많은 예산(돈)이 있는가?”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해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부흥’은 어떤 가치이며, 어떤 도전이 되는가? 그 부흥의 단서가 어디 있는가? 대중집회, 전도집회, 치유집회 같은 대중적 집회를 이끌어내는 것인가?
우리는 부흥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2장의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한 그런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부흥의 단서가 어디에 있었을까를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 연구가 있을 수 있으나 간단하게 사도행전 1~2장에서 상고하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 우리의 부흥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교회의 여러 가지 선교, 교육, 봉사적 사업들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일은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사업적인 일이 아니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복음을 믿으라”로 집약된다.
우리의 삶이,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게 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내 가까이, 내 안에, 내 가정에, 내 교회에, 내 직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언제나 감지해야 한다. 세상의 나라, 돈의 나라, 명예와 권력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음을 감지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까움’을 얼마나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여전히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욕망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내 나라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한가? 우리 자신과 교회, 교단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는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여기에 “예” 할 수 있으면, 부흥은 염려할 것 없다. 이미 부흥은 오고 있으며, 일어나게 된다. 성경이나 교회사 속에 나타난 부흥 운동은 인간이 계획, 조직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쉽게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을 언급하나 이 운동은 1903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대중적이 아니고 선교사들의 성경공부와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바로 하나님 나라 운동의 결과인 것이다. 그 하나님 나라 때문에 일어난 것이 “회개, 기도, 말씀(복음)”이었다.
지금 우리의 부흥 운동의 단서, 그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기본을 찾고, 그 위에서 부흥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행되는 인위적이고, 계획적이고, 프로그램적인 것은 부흥이 되지 않는다. 착각하지 말고 부흥의 단서를 잘 찾아 부흥의 실타래가 한국교회 위에 술술 풀려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영택 목사
<증경총회장>